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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Nov 06. 2019

말랑말랑

몇 해 전, 내내 허리통증 때문에 고생하다가 결국 MRI를 찍었다.

의사 선생님께 전해들은 결론은 “이렇게 아플 상태가 아닌데...” 였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척추는 별 문제 없이 예쁘네요.” 라는 소리도 들었다.

세상에, 척추가 예쁘다니;;


굳이 짚어보자면 나에게도 객관적으로 예쁘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 부위가 있긴 하다. 손.

내 손이 손모델처럼 예쁘지는 않은데, 크기도 작고, 손가락은 가늘고, 마디도 없는 편이며, 만져보면 거친 구석이 없다. 그러니까 나이에 비해(그러하다. 나이....또르르...), 고생한 흔적이 별로 없는 손이다.

그렇다고 내가 곱게 자라서 그야말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힌 꽃길 인생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내 손은 여린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가끔 사람들이 말랑말랑 한 것이 꼭 아기 손 같다고 할 만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실물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음을 알고 있기에 지금 감히 ‘아기’라는 글자를 써 가면서 막 던지는 중이다.)


다시 척추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까지 아플 리 없는 예쁜 척추’를 가지고도 늘 통증에 시달리는가?

의외로 심플한 이유이다. 나는 척추를 받쳐줄 근육이 없다.

즉, 내 몸은 오직 ‘순살’로만 이루어져 있으니, 척추에 가해지는 약간의 압박도 버틸 힘이 없다. 쏟아지는 압박을 두부같은 맨살이 그대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사정인 것이다. 허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는 말랑한 살덩어리로 구성된 내 몸은 자극에도 취약해서 살짝만 긁혀도 발갛게 부풀어 오르고, 언제 부딪혔는지 모르는 곳에 시퍼렇고 노란 멍이 군데군데 꽃을 피우고 있다.  


즉, 나는 여기저기가 묵직하게 아프고, 알록달록 멍이 들어 있는 말랑말랑한 인간이다.


이런 사정 탓에 ‘운동 좀 하세요.’ 는 어딜 가나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이지만 워낙 운동을 싫어하고, 타고난 체력도 없는 터라 나는 그냥 얌전히 앉아서 통증을 감당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아픈 건 매한가지라서.


그런데 갸웃, 이게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랑하게 살기에는 살아가는 동안 해야 할 일도, 마땅히 감당해야 할 압박도 언제나 존재하는 것인데, 마냥 아픈 채로 견디느니 근육을 키워 버티는 것이 장기적으로 맞는 길이 아닌가..하는 생각. 그나마 예쁘다던 척추가 와르르 무너지기전에 말이다.


물론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나는 여전히 운동이 싫다.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전하는  ‘ 매일 척추 접기 10분’ 이 내가 자의로 움직이는 최선이다.

그냥 나는 접고 싶을 뿐, 근육을 키우거나 허리 통증을 완화시킬 생각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언제 부딪혔는지 모르겠지만  또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다.

워낙에 잘 부딪히니 부딪히는 일에는 둔감해져서 그냥 잊어버린 모양인데, 멍자욱을 꾹 눌러보니 제법 아프다.


역시, 근육은 필요한가?

꼭 몸만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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