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대단히 고결하지도 않으며, 흔한 이름처럼 ‘사회 지도층’으로 부르기에는 꽤나 민망한 이들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학생인 나는 그때 그 분들이 그래도 좀 나은 사람들인 줄 알았고, 믿었다. 물론 그 어린 나이에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좀 ‘아니던’ 분들 중 기억나는 분들이 있다면...
기본적인 맞춤법조차 죄다 틀린(예를 들어 물건을 ‘가진’ 을 꿋꿋하게 ‘갖은’으로 쓰신- 기억이 다 안나지만 이 밖에도 수 없이 많았다.) 자신의 저서를 굳이 교재로 선택하고, 서로 빌려보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자 책 옆면에 굵은 매직으로 학과, 학번, 이름을 써 오라고 해서 친히 검사하시던 체육교육과 교수님이 있었고, 내가 알바 중이던 개인 피자 레스토랑에 대학원생으로 짐작되는 여학생들을 데리고 와서는 옆자리에 한 명씩 앉혀놓고 “아메리칸 스타일, 크림 두개.” 커피를 주문하시던 교수님들이 있었다. 그 교수님들 중 한 분은 알바중인 나에게 ‘아가씨, 여기서 일하면 얼마나 받아? 이 분 잘 모셔. 옆에 대학교 제일 높은 분이 되실 분이야.’ 라고도 하셨으니...
어이구, 세상 물정 모르는(과연?)그 분 머릿속에 커피 서빙 하는 나는 <다방레지>로 보였나보다. 헛웃음이 튀어나와서 “**대 교수님이신가봅니다. 저는 **학과 학생입니다. 꼭 기억하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크게 당황하시더니 발걸음을 끊으셨다. 사장님께는 죄송.
이런 분들은 그 정도의 차이만 달리 할 뿐, 워낙 산재해 있어서 '그냥 좀 그렇군.' 하고 넘겼지만 위에 언급한 법학과 교수님은 좀 많이 독특한(?)분이셨다.
아마도 재산권과 관련된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난데없이 집안 토지나 주택의 <등기부 등본>을 떼어오라고 하셔서, 부모가 집도 절도 없는 가난한 학우들을 매우 뻘쭘하게 했으며, 어느 날은 자신의 아들이 학기 중에 결혼을 하는데 곧 할아버지가 된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며느리는 본교 약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며 시험 성적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는 전화를 아들에게 받게해서 둘이 연애를 하게 됐으며 그러다 아이를 가져 결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며느리의 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이라 혼전 임신 때문에 딸을 잡을 뻔했던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보태면서 자신의 깨어있음을 만천하에 알리셨다. 기타 등등.
그렇게 그 분은 수업 중에 유난히 ‘썰’이 많은 분이셨다.
이 분이 알려주신 다양한 ‘썰’ 중에 백미는 연예인에 관련된 정보였다. 중견 연예인 누구(또박또박 실명을 밝혔다.)가 자신의 친척인데 이 년이(정확하게 이렇게 표현했다.) 마땀 뚜 역할을 해서 연예인 지망생 여자아이들을 상납한다고. 또한 모 연예인의 섹스비디오를 재판을 담당한 판사였던 친구가 증거자료로 보았고, 이후에 친구인 자신을 포함해 여럿이 돌려 보았으며 그 안에는 쓰리*도 등장하였다고 했다.
(*구체적인 정황이나 실명을 밝히지 않기 위해 디테일을 조금 축소, 변경하였다. 더한 말이 많았지만 이것을 밝히는 것 조차 가해이므로.)
그 이야기를 무용담 늘어놓듯 펼쳐 놓으면서 방글방글 웃음을 더해 ‘재밌지? 내 수업 듣기 잘 했지?’ 하는 표정으로 혀끝을 날름거리던 그 분을 잊을 수가 없다. 강의실 안에 퍼지던 호기심 가득한 술렁임도.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 때의 나 역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그 ‘썰’은 내 머릿속에서 오랫 동안 그저 재미있는 ‘사실’로 굳어져 있었다. 판사의 친구라던 법대 교수님이 들려 준 이야기니까.
**양 비디오. 한때 세상을 뜨겁게 했던 키워드이다.
관음증 가득한 대중, 바로 우리는 그들의 삶을 ‘호기심’ 이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알권리' 라는 개소리로 마음껏 난도질했다.
죄를 지은 것은 유포자와 그 비디오를 찾아보며 눈을 빛내던 우리들과 천박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찌라시 따위였는데 그 안에 등장했던, 자신의 삶의 자락이 온 세상에 까발려진 이들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건방진 죄인 주제에 그들을 백안시하고, 도덕성을 논하고, 연예인의 처신이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 따위를 재잘거리면서 손가락질 하고는, 뒤에서는 **양 비디오를 검색하던 괴물들은 남녀가 따로 없었으며, 지위 고하도 따로 없었다.
그 시절 언저리, 법학과 교수라는 사람은 수업중에 판사 친구와 공유했다던 연예인의 섹스비디오를 나불거리는 것에 전혀 죄의식을 못 느꼈다. 박사 학위는 땄을지언정 인간에 대한 예의는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수업을 들은 수백명 이상의 대학생들은 낄낄 거리면서 술집에서 그 '썰'을 안주 삼았다. "너 그거 알아?" 라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다. 세상이 변했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속살을 마음껏 헤집어 놓고, 그들이 피 흘리며 쓰러진 후에야 좁쌀만큼의 죄책감으로 하루쯤 애도하는 것, 마치 나는 깨끗한 양 주둥이 바른 소리를 하는 것.
“교수님, 안 궁금한데요?” 따위 하지 못했던, 아니 할 생각조차 없었던 주제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
*잠들기 전, 어떤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빡쳐서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그 기사를 밝히는 것 조차 2차 가해가 될 수 있으니 밝히지 않겠습니다. 짐작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