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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r 26. 2020

연못에 빠졌다.

'너 따위'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

여섯 살 때 연못에 빠졌다.     


그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중학교가 있었고 그 중학교 뒷마당에 연못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교실 두 칸 정도의 크기였던 것 같다.

그 날 동네 아이들과 잠자리를 잡으러 가서 연못 둘레를 쌓은 돌 위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려다 돌이 푹 꺼지면서 그대로 물에 빠져버린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손쓸 틈도 없이 찬 물 속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내 발목을 휘어잡았다. 기겁을 한 나는 울면서 버둥거렸지만 그럴수록 점점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중심을 잡느라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몸은 말을 안 듣고 야속하게도 더러운 연못물만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뿐이었다. 아마도 패닉 상태로 허둥거리느라 물 안과 밖을 오락가락 했던 모양이다. 얼굴이 물속과 물 밖을 오가는 사이 사이로 함께 왔던 동네 아이들이 동동 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연못의 가장자리는 내 키에 미치지 못한 깊이였지만 가운데로 갈수록 수심은 깊어졌는데 나는 착실하게 연못의 한 가운데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발목을 휘어 잡은 그것이 물귀신이라 생각했고 물귀신에게 잡혔다는 공포심은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었을까? 나는 버둥거림을 멈췄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연못의 수면은 고개를 바짝 쳐든 내 턱밑에 닿아있었고, 까치발을 든 발끝이 연못 바닥에 닿았다. 그대로 발을 내리거나 고개를 숙이면 물을 꼴깍 먹겠지만 조금 힘들어도 그 자세를 유지한다면 충분히 나 혼자 걸어 나갈 수 있는 깊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 발목을 휘어잡고 있는 것은 물귀신이 아니라 연꽃 줄기라는 것을.    

  

칭칭 감긴 발목으로 ‘냅다’ 물 속을 걷어찼다. 그 서슬에 발목을 휘감고 있던 물귀신의 억센 손이 툭! 끊어졌고 나는 몸을 '휙' 돌려서 연못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뒤늦게 어른들이 달려왔지만 나는 이미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게다가 기괴하기 짝이 없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 사이에 잠자리 날개를 꽉 끼운 채로.      




문득 이 에피소드가 떠오를 때가 있다. ‘어우, 씨바. 나 여섯 살 때 죽을 뻔 했어.’ 하고 피식 웃어 넘기기도 하고, 그때 내 발목을 휘감았던 차가운 귀신의 손의 감촉, 그리고 그것이 연꽃줄기임을 알아챘을 때 거침없이 발길질을 했던 순간까지 때때로 감각을 바꿔가며 날것으로 떠오르는데 모든 기억의 화두는 결국 ‘두려움’이었다. 여섯 살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 떨리게 맞았던 두려움과, 그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까치발을 든 채 거칠게 물속을 걷어차고  끝내 발목을 휘감은 연꽃 줄기를 끊어버리고 뒤돌아서 생사의 경계를 스스로 돌려놓았던 나의 당찬 몸짓이 기억을  따라온다.


내가 이 공간에 ‘너 따위’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여러 의미로) 나의 모든 것을 끌어 담을 어떤 여정의 기록이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문득 이 낯부끄러운 기록을 남겨둔다면 쪽팔려서라도 주저앉지 못하게 할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내가 체면 차릴 처지가 아니다.


그러다가 오늘 또 문득 떠오른 연못 이야기가 기억 저 너머 잊고 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나는 고개 빳빳이 쳐들고, 두려움을 향해 당차게 발길질을 하고, 삶을 향해 휙 돌아서던 아이였다.  

두려움 따위 개나 줘버린 여섯 살.   


그러니까 내가 나를 찬찬히 바라보면, 어째 좀 짠하기는 해도 싫지는 않다.


예전 사진 재탕.



다음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을 녹여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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