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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Oct 04. 2020

Rhythm

춤 좀 추던 사람이다.        


학교를 마친 금요일에 막차를 타고 고향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친구와 함께 당시에 오직 하나밖에 없던 시골 나이트클럽에서 12시까지 춤추다가 집에 들어갔다. 그때라고 나이트 클럽 헌팅이 없던 시절은 아니지만, 흐느적거리며 다가와서 끼 부리는 남자 사람들 보다  스피커 진동소리가 훨씬 매력적이라 그렇게 나이트를 다녀도 썸 한번이 없었다. 아, 그건 예쁘지 않아서 그랬나보다. 인정. 빠른 인정.     


어릴 때 완선언니를 좋아해서 되지도 않는 브레이크 댄스를 흉내 냈었고, 친구 집에 놀러 가 온 집안에 커튼 둘러놓고 카세트 테잎에서 흘러나오는 ‘런던나잇~’에 맞춰 폴짝거렸다.

(이 노래가 뭔지 모른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직 젊다는 얘기이다. 부러움을 전한다.)     


과거를 회상하면 꽤 오랜 시간 나를 지배한 단어는 단연 외로움이었다. 소심하고 말주변도 없고, 삶에 밴 가난은 적당히 우울의 그림자를 두르기 마련이라 친구도 별로 없었다. 당연히 학예회나 장기자랑 등의 무대에 나설 일은 없었지만, 내 몸은 춤 좀 추는 몸이었다. 어디 내보일 일이 없었을 뿐, 깊숙이 잠재된 흥과  유혹이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 시절 친구의 말을 빌자면 씩씩하게 뻣뻣할 줄 알았더니, 반전으로 유혹이라던. 뭐 그런 것.


지나온 어느 한 시절에 제법 흔들어대던 자락으로 가끔, 요즘도 가끔 저 혼자 휘젓휘젓 춤을 추곤 한다. 토실토실, 뻣뻣해진 몸은 날렵하던 몸 선을 잃은 지 오래이고 박자 감각도 해마다 퇴보 중이라 점차 할머니 댄스에 가까워지지만 추던 가락이 어디로 가겠는가. 아주 가끔 1미리쯤 튀어나오는 내 몸의 도발이 나는 스스로 재밌다. '요것봐라? 안 잊어버렸네?'      


물론 이제는 어느 관광지의 관광나이트 혹은 회관으로 가야 문앞의 기도(‘가드’의 일본식 표현이다. 다만 그 느낌을 살리자면 이렇게 적당히 ‘싼마이’ 삘이 나는 단어선택이 필요하다.)에게 뺀찌(?)먹지 않을 나이라서 전처럼 스테이지를 누빌 일은 없겠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마음은 그 시절이지만 현실과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물론 나도 그 현실과 타협할 생각은 없다.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춤을 추겠다는 프로춤꾼의 예술혼은 아니므로.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춤이라는 것이 때로는 느린 박자에 맞춰 빠르게 몸을 움직일 수도 있고,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빠른 리듬에 더없이 느리게 움직일 수도 있다. 리듬에 맡겨 몸을 흔드는데 바이블은 없다.     

삶이 그러하듯, 언제나 각자의 리듬대로 흔들흔들, 그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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