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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10. 2020

어느 감기 환자의 독서 : <어른의 무게- 장한이 著>

코로나 시대에 접어든지 거의 일년이다. 그런 중에도 지난 11월 말까지 코로나 확진자가 총 4명에 불과했던 이른바 ‘코로나 청정구역’이던 이 작은 도시의 확진자는 오늘로 140명을 훌쩍 넘겼다. 코로나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사실 이곳의 일상은 어느 정도는 느슨하고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것이었기에, 이 도시 사람들의 당황은 생각보다 큼직했다. 거리는 눈에 띄게 한산했고, 동네 수퍼에 모여 수다를 떨던 아주머니들은 간간히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살 뿐, 머물러서 기웃거릴 틈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사라졌다.


이 시국의 감기 환자는 무심코 튀어나온 기침 한번에도 온 이목이 집중되기에 행동거지가 이만저만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늦은시간까지 앉아있는 것이 무슨 의무라도 되는 양 작업실에서 버티는 시간이 열 두시를 넘기기 십상이다보니 감기는 나을 기미가 없었다. 딱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불안함이 불러들인 습관이다. 이대로라면 겨울 내내 콜록 거릴 판이고, 소탐대실이라는 결론에 어제는 결국 조기퇴장(?)을 감행했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침대에 파고 들어 잠이 잘 올 것 같은 은은한 조명을 밝혔으나, 오랜 습관은 쉬이 사라지는 법이 아니라서 눈은 말똥말똥 오히려 생기가 도는 판이다. 가방에 넣어 온 책을 집어 들었다.

브런치에서 필명 ‘이드id’ (https://brunch.co.kr/@workerhanee) 로 활동하시는 장한이 작가님의 에세이 <어른의 무게>     




이드 id 작가님의 <어른의 무게> : 가능한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을 범위내에서.....



"누구나 어른이 되지만 누구나 어른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이미 어른이 된지 한참이 지났건만 여전히 흔들리며, 여전히 갈팡질팡 하는 나는 표지문구에 홀렸다.

음, 내 얘긴가?


브런치에서 만난 이드 작가님의 글은 <글이 전하는 공감과 위로>라는 말에 맞춤으로 맞아떨어지는 글이었다. 일상을 살다보면 ‘나만 예민한 거야?’ ‘나만 불편한거야?’ ‘나만 힘든가?’ ‘나만 흔들리나?’ 등등 온갖 ‘나만?’의 의문부호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그럴 때 나와 비슷한 감정과 공감대를 풀어놓은 글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더구나 과하게 언성을 높이지 않은 자근자근한 말투로 핵심을 저격하면, 나도 모르게 ‘맞아요! 맞아.’를 연발하며 자동차 대시보드 위에 놓인 불독인형처럼 끝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디서든 휴대폰만 열면 만날 수 있는 글도 좋지만, (지극히 개인적 취향으로)한 장 한 장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며 읽을 때 그 공감의 깊이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 이 책은 거창한 말을 동원해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담백한 경험과 그에 담긴 솔직한 감정으로 저자와 독자 사이의 벽을 슬그머니 무너트린다. 직장인이라면,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부모님을 바라보는 자식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그리고 어느덧 어른의 반열에 섰으되 여전히 흔들리는 인간이라면...책 안의 이야기들은 제각각 다른 색깔로 삶을 사는 이들을 아우르는 나름의 교집합으로 말을 건내고 있었다.

  

감기 환자는 늦도록 책을 놓지 못했다. ‘맞아요. 나도 그래요.’ 중얼거리면서.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소독차가 단지 안을 소독하고 다녔다. 갑작스런 확진자 증가에 따른 생경한 풍경이다.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과 빨간 소독차량이 하얀 액체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주 오는 소독차를 비껴서 옆으로 지나가려는 찰라, 뺑~! 하는 날카로운 경적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소독차 운전자가 굳이 옆으로 목을 비틀어 나를 보면서 소리를 질러대며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뭐지? 아마도 소독차를 보고도 비킬 생각 없이 직진해 온다고 나를 비난하는 모양이었는데, 나는 밖에 서 있는 다른 관계자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충분히 비껴서 옆으로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움직이는 중에 오히려 길막에 가깝게 속도를 높인 것은 소독차 쪽이었다. 갑작스런 코로나 확진자 증가세에 이 지역 공무원과 공무직 직원들은 본인의 업무가 아닌 일까지 모조리 투입되어서 비상이라고 한다. 혼란스럽고 일견 짜증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갈곳 잃은 짜증을 내가 받을 이유는 없었다. 예민한 시기에 공무를 수행하는 것과, 본인의 짜증을 제 3자에게 마구 쏟아내도 되는 일에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에 차에서 튀어내려 드잡이질을 한판 해야 직성이 풀리겠지만 결과가 좋을 리가 없으므로 그냥 물러났다. 그리고 입 안에서 웅얼거려본다.          


누구나 어른이 되지만 누구나 어른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배운 것은 써먹으라고 했다. 흥.               





나는 서평을 못 쓴다. 독후감도 싫어한다. 그저 내가 읽고 느끼는 그 순간에 집중할 뿐, 흘려보내는 것이 오랜 독서 습관인 동시에 다른 이의 글을 요약하고, 평가하고, 정리하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다. 그런 습관 탓에 같은 책을 몇 년만에 읽었는데 한참 후에야 <기시감>을 느끼고 갸웃거리다가 예전에 읽은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먼산)


그런 맥락에서, 이 글은 서평이라기 보다는 그냥 개인적 썰에 가깝다. 전문적인 서평이나, 책의 홍보에 도움될만한 글도 아니다. 그저 감기 환자가 책을 읽었다는 얘기. 거기에 보태서 ‘마, 내가 이 책 저자랑 댓글도 주고 받고, 어? 마! 어?’ 의 ^쀼듯함^이 한 스푼쯤 끼얹어졌다는 것?  그러니 이 글로 책을 설명하거나, 감히 소개한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좋은 책을 만나서 진심으로 기뻤으며, 작가님의 편안한 글투가 꽤나 부러웠다는 소감 정도만 남길 수 있겠다.


얼굴 한번 뵌 적 없지만, 이 공간에서 글로 소통하던 분들의 책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이 공간에서 소통하는 작가님들의 책이 세상에 쏟아지길 기대한다.




사족: 비록 이 안에서만 숨 쉬고 있는 내 글이지만, 내 글도 누군가에게 작은 공감 하나쯤 나눠주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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