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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Sep 21. 2020

숨어, 스며들다.

책상 뒤, 구석 자리.


작업실 책상 뒤에 요가매트를 깔고 누웠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허리가 아파서 일명 '엉뜨' 방석을 찜질팩 대용으로 허리에 깔아두고 톡톡한 방석은 베개삼아 베고 누웠다.

조명은 끄고 캔들을 켰더니 분위기가 은근히 묘하다.


작업실에서 눕는 일은 지양하는 바이다. (지향 아니고 지양이 맞다.) 

그럼에도 도무지 못 견디게 피곤한 순간에는 누울 곳을 찾아 자리를 깐다.

발 뻗을 곳 없이 좁은 방이 아닌데도 넓은 공간은 내팽개치고 굳이 책상 뒤편 구석으로 숨어든다.


어릴 때 부터 장롱에 들어가 개켜둔 이불위에서 잘 만큼 좁은 공간에 웅크리고 자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두고 엄마는 웬 청승이냐고 했지만 나는 탁 트인 공간보다는 숨은 공간을 좋아한다. 도서관에서도 개방형 책상보다 칸막이 책상, 특히 구석자리를 좋아했고, 카페에 가도 구석 자리부터  찾고,  비어있는 찜질방 토굴을 만나면 득템한 기분이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창가 자리에 옹크려 창에 몸을 기대는 것이 편하다. 


오래 전, 서울에서 공동 작업실을 쓴 적이 있었다. 사연을 설명하자면 복잡하고, 아무튼 여차저차 한 공간 안에서 다섯명이 글을 썼는데 그때도 나는 피곤하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거실 소파에서 자는 사람, 간이 침대를 펼치고 자는 사람, 책상에 엎드리거나 의자에 기대 자는 사람.. 다양한 모습으로 잠을 청했는데 나는 꼭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발도 뻗지 못하는 공간에서 옹크리고 잠이 들면, 간혹 다른 글동지들이 이불로 입구를 막아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숨 자고 나오면 기분이 좋았다. 옹크린 무릎이 쑤시고, 간혹 목이 꺾여 불편했는데도 기분은 좋았다. 관속에서 환생한 기분인가?


고작 구석에서 잠드는 일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 문장에 의미를 새기려는 강박은 좀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그냥 구석자리가 좋고, 숨듯, 스며드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나다.




오늘따라 커피를 마시려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입 안은 가시가 돋은 듯 서걱거리고, 물 먹은 솜 같은 몸뚱이는 질질 끌고다니는 기분이었다. 

어젯밤은 충분히 잤고, 느즈막히 나왔으니 피곤할 일이 별로 없는데도 못 견디게 피곤했다.

적당히 접고 들어가 포곤한 내 이불을 덮고 누웠으면 좋겠지만, 오늘 미뤄둔 일이 내일 내 목을 조일 것이 분명하니 그럴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석으로 숨어들어 잠깐 잠이 들었다. 


잠든 동안의 세상은 내가 알게 뭔가. 깨고 나서 마주하면 될 일이다.



구석에 숨어 한 풀 자고나니, 견딜만 하다. 

그렇게 또 한 날, 삶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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