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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Nov 06. 2021

명함 있으신가요?
네, 저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

 

<명함 있으신가요?>     


오래전에 썼던 글의 제목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라는 곳에 발을 딛고 보니 사람들을 만날 때, 첫인사 다음으로 명함을 받는 일이 흔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의 요약본이 작은 종이 한 장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명함을 준 상대가 나에게   ‘명함 있으신가요?’ 하고 묻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누구냐, 넌?'을 그렇게 에둘러 묻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아니요. 저는 소속된 곳이 없어서 명함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명함이야 만들면 되겠지만 이름 말고 박을(?)것이 없으니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딱히 소속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제 발 저림>이 담긴 글 위에 '명함보다는 이름값을 하자.' 이런 그럴싸한 분칠을 끼얹었을 것이다.                     



잠정적 글쓰기 휴업상태이다.


금전적 사정이 아쉬워 돈벌이로 시작한 일 덕에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야 했고, 11월 말까지 약 한 달 정도는 한시적으로 투잡을 뛰는 중이다. ‘내가 지금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이 짓을 왜 하는 거지?’ 하는 마음이 수시로 욱! 하고 치민다. 그런데 떼돈이 아니더라도 나의 가난을 0.00001% 라도 줄여줄 수 있다면 해야 하는 것이 솔직한 속사정이다. 그 와중에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으니 오후 6시에 퇴근을 하면 후다닥 집으로 달려가서 동생의 안위(?)를 확인해야 했다. 그 친구는 평생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친구라서 몇 가지 상황을 챙겨야 하는 사정이다. 물론 활동 보조를 해 주는 분이 오시지만, 오후 5시쯤에 그분이 돌아가고 나면 동생이 혼자 있는 터라 일단 집에 들어가서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잠시 나와도 된다.  동생에게 나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나면 밖으로 나와서 중간중간 전화 통화로 안부를 확인하며 신경 써 주기만 해도 되니까 나는 다시 작업실로 나와서 글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집에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가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렇게 나는 계속 글을 쓰지 못했다.

이미 넘겼어야 할 원고는 밀리고 밀려서 죄송하다고 말할 염치조차 없었고, 기획했던 모든 글들의 서두도 시작하지 못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투잡을 뛰고, 엄마는 입원했고, 동생은 그 모냥(?)이니까, 피곤해서.....

아니, 그전부터. 

아, 그땐 그러니까 여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니까..... 

아니, 그전부터.     


어떤 극한 상황을 방패막이로 들이밀어도 결국 내가 원인이었다. 나는 쓸 수 없었고 쓰고 싶지 않았다. 

이깟 되지도 않는 작가 따위 놓아버리고 싶다고 틈만 나면 떠들었다. 딱히 대안이 있거나 다른 길을 모색한 것도 아니다. 그냥 무기력하게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허름하고 추운 나의 작업실이 내내 그리웠고, 타각 타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의 감각이 그리웠다. 더 좋은 장면, 더 좋은 표현, 더 좋은 복선, 더 좋은 한 방! 을 고민하느라 지끈 해지는 머리와 마음이 묘하게 간질간질 해지는, 명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그 순간의 독특한 감각, 그리고 그것이 풀렸을 때의 벅찬 후련함이 그리웠다. 내 안에서 나온 이야기가 내가 터놓은 물길을 따라 흘러가서 고이고 차오르는 순간이 그리웠다. 비록 다시 보니 형편없고, 고칠 길이 막막해지고, 냉정하게 이건 아니라는 판단으로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백지에서 시작하더라도.   


  



명함을 만들었다.      

여전히 나는 어딘가에 소속된 것도 아니며, 내세울 이력이나 직함도 없었다. 그러나 촌스러운 내 이름 석 자와 <작가>라는 두 글자가 곧 죽어도 나의 정체성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실명은 밝히고 싶지 않다. 




  

명함 디자인을 부탁하면서 색깔도 빼 달라, 선도 넣지 말아 달라 부탁했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오롯이 글이 되듯, 나는 흰 바탕에 검은 글씨와 같은 사람, 글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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