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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Nov 25. 2021

기다리지 않고 내 멋대로 하겠다.

서른이 낼모레이던 그때, 나는 서른이 되는 것이 괜히 서러워서 친구와 함께 지리산에 올랐다. 물론 산도 타본 사람이 타는 거라 초짜의 지리산행은 지독한 개고생만 남겼고, 그때 산 등산화는 밑창이 자연적으로 삭아서 사라졌다.....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나이였는지. 그저 그때의 내가 귀엽다.      

 


   

올해가 너무 길다. 마흔을 넘기던 순간부터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다. 늘 겨울이 되면 괜히 슬펐으며 꼬박꼬박 먹는 나이와 그와 비례하는 뱃살, 그와 반비례하는 재산이 서러웠다. 그래서 붙잡을 수만 있다면 이놈의 나이 꽉 붙잡고 싶었는데, 올해는 달랐다. 그저 빨리 이 해가, 2021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언젠가는 맞이할 일이겠지, 무심하게 어느 순간 그날이 오겠지 생각했던 부모와의 영원한 이별. 생각보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아빠와 이별을 맞았고, 그 시간을 관통하며 나는 온통 내가 못 한 것만, 무심했던 것들만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병원으로 가기 전, 집에서 들었던 마지막 내 목소리는 있는 한껏 짜증을 내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끝까지 못된 딸이었던 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고, 허탈했다.   

  

그리고 곧이어 장애인 동생과 얽힌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 몸과 마음이 바쁘고, 일상은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녀 겨우 도움을 받아 일을 진전시키고 이것만 끝나면 어느 정도 여유를 찾겠지 하던 순간, 이번에는 엄마가 허리 수술을 받고 입원을 했고, 엄마가 입원한 약 한 달간 때아닌 다 큰 동생 육아(?)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아기의 육아라면 아이의 성장과 함께 끝이 있을 텐데, 이 친구는 평생 아기라 끝이 없겠구나. 잘하면 나는 이 친구의 똥오줌과 함께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겠다는 참으로 웃픈 결말이었다.   

   

퇴원하고 돌아온 엄마는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전보다 한층 약해진 몸과 마음으로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를 입에 달고 있다. 몇 번을 무심히 흘려들었지만 어느 날은 엄마에게 솔직한 속내를 콕, 콕 귓전에 때려 박았다.     


“엄마가 오래 살아야 내가 **(동생) 이를 책임 안 져도 되지. 그러니까 나보다 엄마가 오래 살아라. 아프지 말고. 제발. ”     


그날부터 엄마의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타령은 종결되었다. 대신 관절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놓으라시고, 입이 심심하다며 귤 한 박스 사 오란다. 감사해요. 어머니. 나는 허리가 무쇠 강철이라 귤 박스쯤은 덥석덥석 들죠. 아무렴요.     




내가 진심으로 넋이 반쯤 나간 건지 며칠 전에는 주유소에서 자동 세차를 하던 중에 그야말로 ‘김여사’가 되고 말았다. 기어 중립에 놓고, 브레이크 발 떼시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왜 차가 뒤로 갈까? 왜 나는 그 상황을 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한참 뒤에야 화들짝 놀라서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앞으로 갈까. 주유소 직원이 혼비백산 뛰어와서 내 차 창문을 미친 듯이, 정말 미친 듯이 두드렸다. 머쓱해서 피식 웃으며 지잉... 창문을 내리니 아저씨는 근엄한 얼굴로 핸들에서 손을 떼라고 단호하게 지시하시더니 본인이 핸들 조작을 하며 차를 운전하셨다. 그리고 하나하나 일러주신다. 기어 ‘N’ 자에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 떼고, 핸들 꼭 잡고 있으라고.


내가 자차 운전만 햇수로 19년째다.          


온통 흐트러진 채로 휘청이면서 사는 것 같았다. 2021년이 너무 길고, 힘들고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올해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하루 날짜를 세면서 아직 멀었나? 아직도 11월인가? 를 중얼거린다. 마치 새해가 되면 기적처럼 모든 것이 괜찮아지기라도 할 것인 양.          


그런데 사십여 년을 살아본 경험으로 단호하게 말하건대 새해가 된다고 뿅! 나아지는 일 따위 없다. 그저 짧은 순간들이 쌓여 하루가 되고,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되고, 영원이 될 뿐.




갑자기 닥친 일들이 일상을 흔들지만, 결국 그 물살을 뚫고 살아내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래서 새해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올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냥 당장 할 일을 내 멋대로 하기로 했다. 나의 시작이 꼭 1월이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내일은 12월 초에 시작하려고 했던 요가를 당장 등록하러 갈 것이고, 오늘은 호수를 두 바퀴 돌았다. 밀어둔 원고를 썼고, 소설 공부를 바닥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고, 새삼스레 한자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최 모 씨는 살기로 했다.               


허리 통증 때문에 질러버린 스탠딩 데스크, 얘 사놓고 열 번도 못 썼다. 이제 본전 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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