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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21. 2021

나는 숨이 짧아요.

지난 달 말에 요가 수업을 등록하고 오늘까지 열 번 정도 갔습니다.

빙판에서 미끌~ 하는 바람에 허리를 살짝 삐끗한 며칠을 제외하고 약속했던 주 3회는 다 가고 있는 중입니다.

(기특해라.)


     

이번에 요가를 시작하면서 마음 먹고 욕심을 내려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90도쯤 꺾이더라도 나는 30도에서 만족하자. 어떤 이는 몸을 폴더로 접겠지만 나는 팔만 땅에 닿아도 충분하다. 몸통이 비틀어지지 않거든 그냥 살짝 돌린 채로 멈추자. 그리고 눈을 감고 오롯이 숨소리에만 집중하는 연습은 충분히 해보자.    

 

저는 사실 숨이 굉장히 짧아요. 그래서 요가 수업 중에 컥! 하는 돼지(?) 숨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물론, 많이 쪽팔립니다. ;;;  들이마시고, 내 쉬는 호흡을 따라 하다 보면 가슴께에서 숨이 뭉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호흡 중간에 숨이 탁탁 끊어지곤 합니다. 역시 나는 숨이 짧구나.     


오늘은 평소보다 수강생들이 좀 적게 왔습니다. 그 덕에  다른 때보다 강사님이 개인별로 자세를 잡아줄 여유가 좀 있었는데, 나는 분명히 똑바로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삐딱하거나 앞 뒤로 몰려있었던 모양입니다. 바른 자세라고 잡아주는 자세가 너무 어색하더라구요. 그 동안 삐딱한 몸에, 틀어진 몸에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1초만 더 버티자.' '여기서 더 하면 허리가 아플거야. 아프지 않아야 하니까 나는 자세를 풀어야겠다.' 이렇게 수시로 스스로를 확인하며 동작을 따라했습니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중간 중간 돼지 소리도 좀 내면서 한 시간 동안의 요가 수업을 마쳤습니다. 저질 체력 최작이 오늘도 해냈습니다!! (쩌렁쩌렁)      




뒷정리를 하는데 강사님이 다가오시더니 “어떠세요?” 하고 묻습니다.


“죽겠어요.”하고 대답했죠. (진심입니다....)    


“그런데 되게 많이 좋아지셨어요. 아세요?”

“초큼? 야주 최큼 좋아진 것 같아요.”

“아뇨, 집중력도 좋아지셨고 뭔가 되게 여유가 보여요. 전에는 안 그러셨거든요.”     


제가 몇 해 전에도 이 요가원에 등록한 적이 있었지만 허리 통증 때문에 몇 번 못 나가고 그만뒀었는데 그때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허리 통증이 그때보다 줄긴 했어도 제 허리통증은 디폴트값이라 없어지진 않아요.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런데도 그때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이 있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를 바라보는 저의 태도일 것입니다.지난 달에 요가원에 등록하러 가서 말했듯이 이번에는 ‘나를 바라볼 시간’을 갖고 싶었거든요. 저는 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들어 제가 깨달은 것이 있는데 저는 너무 힘을 주고 살아요.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를 바라보면 저는 의미 없는 낙서를 하면서도 볼펜을 쥔 손에 잔뜩 힘을 주고 있고, 책을 보면서도 이를 악물고 있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도 어깨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가서 어깨가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더욱 뻣뻣하고 경직되서 여기저기가 뭉치고 힘이 드는 것이겠죠.     


강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반가워하시네요. 스스로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면서 천천히 의식하면서 조금씩 풀어나가자고, 진짜 좋아지셨다고. 


저도 동의합니다. 아, 내가 힘을 주고 있구나. 내가 쓸데없이 이를 악물고 있구나. 미간을 찌푸리고 별것 아닌 것들에게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구나.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순간에 잠시 몸과 마음의 돌덩이를 내려놓으니까요.               

 

아직, 자연스럽게 힘을 빼는 수준은 되지 못합니다. 그냥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 그것 뿐입니다.


'나는 숨이 짧구나. 나는 늘 힘을 주고 있구나. 그렇구나.'

     

저는 요가원에 가면 내 옆에서 착착 몸을 접는 누군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봅니다.

숨이 짧은 나를 봅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오만방자하게도)저 사람은 나보다 못할 것 같은데? 하고 마음속으로 순위를 매겼다가 착착 접히는 그의 몸을 보면서 슬그머니 꼴찌가 되는 기분을 매번 느꼈거든요.


강사님이 저에게서 어떤 ‘변화’를 보셨다면, 그것 일겁니다.


그런 걸 성장이라고 하더군요. 그것을 재는 잣대는 매 순간의 나일 뿐입니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수치까지 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겨우 한올 만큼 자랐다고 해도 의미 없는 일이 아닐겁니다.






이 글을 쓰기 전, 저는 운동을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와 원고를 조금 끄적이다가,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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