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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an 14. 2022

오롯이 나를 품고 싶은 시간이 있다.

워낙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느라고 학교에 안 간 적도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아침에 일어나기는 너무 싫은데, 싫어하는 수학 수업이 보충까지 두 시간이 있었던 날, 그냥 이불을 둘둘 말고 자버렸다. 

(엄마의 호통을 벗어나기 위해 메서드급 아픈 연기를 했던 것 같다. 덕분에 멀쩡한 정신으로 하루 종일 누워 있는 호사 아닌 호사, 고문 아닌 고문을 겪어야 했지만.)     


어릴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지옥이었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생활은 지옥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프리랜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병원 예약처럼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아침에 움직여야 하는 일정에는 그야말로 좀비가 따로 없었고, 지인들과의 단톡방에서도 아침에 올라온 이야기에는 전혀 답하지 않았다. 모두가 한바탕 쓸고 지나간 단톡방에서 정오가 훌쩍 지난 시간에 ‘여러분, 굿모닝.’ 따위를 날리는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알바 출근 전에 작업실에 나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어떤 절박함이 나를 이끌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실상 그 밑바탕에는 공포가 있었다. 이렇게 살다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채로, 혹은 그보다 더 안 좋은 모양새로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공포가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서, 조금이라도 약한 틈이 보이면 그 틈을 귀신같이 비집고 들어와 슬그머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휘어 감고 나를 흔든다. 그럴 때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파장이 일어 숨이 턱 막히거나 어지럽다.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새벽 기상, 소위 ‘미라클 모닝’을 다룬 책들 혹은 유튜브 영상들은 하나같이 아침에 눈을 뜨고 ‘아싸, 신나는 아침. 오늘 하우도 즐겁게 살아볼까나? 룰루루~’를 외치라고 하지만 아직 나는 ‘아무것도 아닌 하루겠지만 그래도 이대로 자버리는 건 좀 민망하잖아?’ 정도의 감정이다.      


정말로 인생이 바뀌는지는 한 1년 정도 해본 후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참고로 나는 요가와 새벽 기상을 일단 1년 동안 하기로 했다. 1년 안에 대박작가가 된다거나 수십억 대 자산가가 되는 일은 가능성이 희박하겠지만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는 것이나 요가 좀 하는 것은 뭐.      


여담이지만 나이가 칠십이 훌쩍 넘은 내 엄마는 평생 5시면 일어나 아침밥을 했다. 새벽 기상이니 미라클 모닝이니 요란 떠는 것을 두고 ‘뭔 개소리여?’ 할 만큼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들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일상 안에 스며들면 별것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서히 일상 안에 기존과는 다른 가치들을 스며들게 하는 것,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 이만큼 살아온 내가 기특하기도 하지만, 못마땅한 부분이 여전히 없지는 않다. 사람을 고쳐 쓸 수는 없으니 품고 있는 습관, 가치들을 하나씩 바꾸다 보면 나에게 있는 다른 면이 발현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 모습은 마음에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제까지 매력 없던 남자가 갑자기 미치도록 사랑스러워졌다면 그건 내가 돌았을 확률이 높겠지만, 슬쩍 돌린 고개에서 숨 막히는 목선을 봤을 수도 있지 않나. 그동안 정면만 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느릿느릿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와 물을 한잔 마신다. 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아침 식사까지 끝낸 후에 작업실로 나오는데, 대략 6시 전후이다. 더 서두른다면 일찍 올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이 생기는데 여유가 조금 있는 날에는 글을 쓰고, 시간이 애매할 때는 책을 주로 읽는다. 그러다 보면 늘 아쉬운 것이 ‘끝내야 할’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아직은 알바를 하러 나가야 하는데 마냥 죽치고 있을 수 없어서 수시로 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노트북으로 글을 쓸 때야 하단에 시간이 나오니까 괜찮은데 몸을 돌려 책을 읽을 때는 수시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려니 시간의 품 안에 따듯하게 안겨있는 것 같은 기분이 깨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날로그시계를 하나 샀다. 탁상시계를 사려다가 작은 손목시계를 하나 샀는데 책상 위에 풀어놓고 슬쩍 곁눈질로 시간을 확인하는 기분이 제법 괜찮다.          


그렇다고 내가 아날로그 예찬자는 아니다. 나는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것보다는 인터넷 쇼핑이 좋고, 손글씨보다 타이핑이 편하고, 기계식보다 전자식이 좋다. 우물을 펌프질 하는 것보다는 버튼만 누르면 시원한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좋으며 비둘기 발목에 편지를 묶어 날리고 하세월 님의 소식을 기다리느니 카톡의 ‘1’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텔레파시를 쏘는 쪽을 택하겠다.   

   




내가 변했나? 맞다. 나는 변했다. 최근 1달 사이에 특히 많이 변했다. 

그런데 나의 이 작은 변화의 시작은 최근의 새벽기상이 아니었다. 당장의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던 작년 봄, 구인 사이트에서 오전 8시~ 12까지의 사무보조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를 봤을 때,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학교도 안가던 내가 그 구인공고에 이력서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고 출근을 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꼼짝없이 6시 30분에는 일어나던 자본주의의 힘. 그 지독하다면 지독한 현실적인 이유가 어느새 내 안의 시간을 훌쩍 당겨놓았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일이란, 결국 뜻하는 대로 가게 되는 것이며, 삶의 연이란 진득하고 아득한 것이다.


그 변화를 발판으로 이제는 기꺼이 원해서 선택한 아침의 한 시간, 그 시간 동안은 어떤 것도 끼어들 틈 없이 오롯이 나만 품고 싶었다.       


        


뱀발.     


나는 또한 명상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명상가(?)들이 주장하는 바 대로 편안한 마음이 일기는커녕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들 때문에 되려 머리가 조여 오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그랬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밀려온 예의 그 ‘공포’가 나를 흔들어 버렸다. 안절부절 글도 쓰지 못하겠고, 시간을 죽이려 인터넷 사이트의 가벼운 게시물을 읽었지만 그 글씨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사방으로 제멋대로 흩어졌다. 에라 모르겠다. 빌어먹을 명상이나 한번 해보자 싶어 방석을 깔고 앉아 눈을 감았다. 배운 대로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흐업. (여전히 숨이 짧다.)     


얼마나 버티는지, 어떤 자세로 앉아 있는지 보고 싶어서 측면에 핸드폰을 세워놓고 동영상을 찍었다. 한 2-3분쯤 흐른 것 같았는데 6분이나 버텼다. 대견하다. 그런데 저 앞뒤로 두툼한 몸통은....?   


  

살부터 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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