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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Feb 18. 2022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이미지 출처 : mbc


알만한 사람은 다 알만한 유명한 짤이다.

그러게 스트레칭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냥 하는 거지.          



글을 쓸 때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쓰는 거지.


글을 쓰려면 생각도 하고, 고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좋은 장면, 대사, 복선, 구성 등 고민할 것들이 무구하다.     

그러나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는 어떤 생각들이 끼어들 틈이 없이 오직 손가락을 움직이는 나와 하얀 화면과 타각 거리는 타이핑 소리만 존재한다. 지독한 싸움이다. 사실 적도 없고, 승패도 없다. 매일 스스로와 싸우고, 스스로와 화해한다. 그리고 점수가 있는 것도 아니요, 커트라인이 있는 것도 아닌 목표를 향해 막연하게 준비하고, 고민하고 희망 회로와 절망 회로를 번갈아 태워 가며 피를 말린다.     


이 과정이 징글징글하고 무섭다. 막상 빠져들면 즐거운데 빠져나왔을 때의 허탈함과 밀려오는 불안, 수없이 마주한 거절.

그래서 나는 많은 날들을 포기했었다. 시작했다가 포기하고, 포기하고, 포기하고.

어떨 때는 몸이 아파서, 어떨 때는 누군가가 힘들게 해서, 어떤 때는 가족 때문에 라면서 근거를 제시했지만 본질은 내가 놓은 것이다.     


사랑하는가?

문득 떠오르면 설레고, 끝내 보지 못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잊은 듯 살다가도 어느 순간 사무치게 가슴이 저린 것, 그런 것이 사랑이라면 내게 글 쓰는 일은 언제나 그랬다. 놓아지지도 않고, 놓아버리자 마음먹으면 더욱 아팠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밤은 오고, 날은 간다.

어젯밤 집에 들어가는 길에 크고 동그란 달을 보았다.      

‘보름이 지났지.’ 이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2월이 되었지만 겨울 냄새는 코끝을 떠나지 않았고, 피부에 닿는 바람은 차가웠다.      


그만할까?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 더 많은데 일도 안 하면서 괜히 작업실 월세만 따박따박 나가고, 몸은 몸대로 지치는데 그만할까?


작업실 보증금을 빼서 사고 싶었지만 지르지 못했던 백이나 하나 살까?     

그러고 나면 뭐가 남을까?

뭔가를 이루어 본 적이 없는데, 아직 남은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지?

(갑자기 비명횡사를 하지 않는 한 15년은 더 살지 않겠는가?) 

이렇게 살다가 나이가 들면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건 될 수 있겠다. 지금은 아직 근로능력이 있어서 안된다고 들은 것 같다.  그러다 독거노인으로 고독사?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되게 슬프다.


알량하게 글 쓰던 재주 말고는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서 취직도 쉽지 않을 것이고,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즐거울 리 없다. 다만 지금 글을 쓰는 일로 아무것도 건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오만 생각을 끄집어낸다.

              

나이도 많고.

돈도 없고.

그렇다고 글을 되게 잘 쓰는 것도 아닌데.

뒷심도 없고.

글이 창의적이지도 않아.

이건 이미 레드오션인데........

될까?          




힘들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힘들었다. 

늙은 엄마와 장애인 동생이 함께 사는 허름한 연립주택, 그 앞에 덩그러니 뜬 큼직한 달 앞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작업실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내려놓고, 백기투항하고 싶었다.

작가가 아니고 그냥 실패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집도 절도 없고, 그럴싸한 필모도 없는 현재의 모습이 그냥 끝이며 나는 더 이상 나아질 게 없다고 땅땅땅. 인정하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냐, 그냥 하는 거지.    


작업실 책상 뒤에 걸린 화이트보드는 낙서장이자 일기장이다.



          

나는 힘들면 잠수 탄다.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핸드폰 꺼 놓고, 꼬박꼬박 글을 썼던 블로그도 날려버리고, 카톡도 툭하면 지워버린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를 날려버려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러지 못했다. 잘 읽었다는 댓글, 힘내라는 댓글, 내 글이 좋다는 말 한마디들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그러지 못했다.     


가식이 아니다. 

나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와서 셀프 토닥이라도 하고 싶었다. 무너지지 않고 일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낯 모르는 이들이 글줄로 남긴 토닥임이 벼랑 끝으로 걸어가던 마음을 멈춰 세우고 뒤로 한 발 물러나게 한다.

     

브런치가 폭파되지 않았다면, 나는 놓지 않았으며 어디선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글 쓰는 사람>인 것이다.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두 번인데, 듣기 좋지도 않은 타령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잠시 멈추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또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응원을 전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결국 놓지 않았습니다. 

일일이 인증하고 드러낼 수는 없지만 단단하게 제 길을 가려고 합니다.

어떤 것도 나를 흔들지 못한다는 마음으로, 끝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글이라면 그냥 씁니다.


좀 늦었어도, 좀 촌스러워도 내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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