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불명의 간경화.
엄마가 간경화(간경변) 환자가 되었다.
초음파상 간의 모양이 울퉁불퉁 했고, 추가 피검사 결과 간경화의 징후가 분명하였으나, 간경화의 가장 흔한 원인인 B형, C형 간염이나 지속적인 음주 전력도 해당되지 않았다.
즉,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간경화라고 내과 의사가 말했다.
요즘은 간경변이라고 한다는데, 의사는 간경화라고 일반인(?)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결과는 이렇게 되었고, 중한 병의 진단을 받은 모든 환자와 가족들이 그러하듯 ‘그 때’를 되뇌이며 한탄도 하고, 후회도 했다.
구구절절 옮기지는 않겠으나 나는 ‘진즉에 신경 써서 병원에 가자고 할걸.’을 무한 반복 하는 중이다.
나는 늘 무심했고, 비겁했고, 겁이 많았다.
보통의 가정과 다른 가족 구성원을 가진 나는 늘 엄마가 떠나는 것이 무서웠다.
정확히는 내게 남겨질 동생의 존재와 그 막막함을 미리부터 한껏 걱정한 것이다.
양껏 비난해도 별 수 없다. 나는 그렇다.
‘끌어당김’ 이니, ‘확언’ 이니 하는 자기계발서에 자주 등장하는 말들이 있다.
즉,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인데, 불행을 생각하면 불행이 오고, 걱정을 생각하면 걱정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조동이 방정 떨지 말라’ 고 하셨다.
나는 늘 최악을 상상하고, 그것이 아님에 안도하는 비겁한 삶을 살았다.
보험이라 생각했다.
‘잘 될 리 없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네.’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살았다.
한껏 걱정하고, 걱정을 더는 것으로 든든한 보험을 든 기분이었다.
혼자 가기 무서웠으면서, 혼자 가겠다고 허세를 내뿜던 엄마는, 초음파 진단 결과를 건조하게 내뱉는 의사 앞에서 ‘아, 네.’ 높낮이 없는 대답을 남기고 덤덤한 척 돌아서 나왔다.
“이제 하다 하다 간경화가 다 왔네.”
허탈한 듯 그 말을 내뱉는 주름진 엄마의 얼굴에서 짙은 회한이 보였다.
검사 때문에 쫄쫄 굶은 엄마와, 덩달아 쫄쫄 굶은 내가 엄마취향의 곰탕집에서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을 먹었다. 딸년과 엄마의 소용없는 ‘그때 그랬어야지.’ 가 오간 이후 둘은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겠나, 엄마는 아프고 딸년은 미리 챙기지를 못했는데.
그 이후로 내내 간경변, 간경화 등등을 검색하느라 손목이 뻐근했다.
현대의학으로 간경변은 치료가 없는 병이라고 한다. 그냥 진행상태를 관찰하는 것 밖에 할 것이 없다는 의사의 말처럼 검색결과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속상하고, 화가 나고,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일어나기 싫어서 늦잠을 잤고, 오후가 다 되도록 씻기 싫어서 씻지도 못했다.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나가려니 이틀째 안 감은 머리가 노숙자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꼴로 인터넷 검색만 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작업실에서 씻고 문밖을 나섰다.
엄마는 병이 생겼고, 나는 후회했고, 이것저것 무섭고, 문득 서럽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부여잡고 있을 수가 없다.
감정이 고여서 썩지 않게, 간경화, 간경변으로 빼곡한 인터넷 창을 닫고, 나의 일상을 살아야 했다.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고, 이미 벌어진 일의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복기하는 대신, 비겁했던 내가 죽이도록 밉지만,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는가.
겁나고 무섭고 두려워서 정면승부 하지 못하는 비겁한 인간, 너무 싫어서 그만하겠다.
여전히 나는 내가 너무 밉다. 이 상황도 싫다.
그런데 내가 할 일, 내가 있을 곳을 외면하면서 또 후회할 일을 만들 수는 없었다.
어딘가에는 쏟아내고, 흘려보내고, 품고 있지 말아야 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지었고, 감정에 휩싸여 일부러 계속 자려고 애쓰는 딸을 깨웠다.
'아침에 요가 간다며?'
'안 갈래. 허리 아파.'
*몇 번 말했지만,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친한 친구한테 하면 더욱 답이 없다. 두서없는 글이다. 그러나 흘려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