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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Sep 08. 2021

어느 ‘보통이’ 아닌 사람에게는 지독한 그것.

산 사람이 사는 일.


아빠가 떠나고, 한달여가 흘렀다.

장례를 치르고, 한웅큼의 유품들을 비우고, 여기저기 드문드문 감사인사를 전했다.

‘사망사실을 안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는 사망신고를 마쳤다.

아빠가 떠난 7월 31일로부터 딱 한달을 채운 8월 30일이었다.     


이제, 일상을 지나며 문득문득 고인을 떠올리다가, 어느순간 미안하다가, 사무치게 그리웠다가를 반복하며 남은 생을 살아내는 일이 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지극히 당연한 보통의 절차들 때문이다.


상속이 걸려 있었다.     

아빠의 재산이라고 해 봐야, 작은 집 한 채가 전부인데, 이것을 상속하는 과정이 지난하고 길다. 보통의 경우라면 가족끼리 합의해서 각종 서류들을 첨부하면 된다. 빠르면 하루, 길어야 며칠이 걸리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그럴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동생이 있다. 중증 장애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친구.

이 친구는 살아있으되, 사회적으로 혼자 자립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각종 사무적 절차들은 그것을 증명해 내야 했다.     

여기저기서, 그러니까 하다못해 내가 피보험자로 되어있는 보험의 수익자가 아빠로 지정되어있는데 이것을 변경하려는 간단한 일에서조차 그들은 당연하게 가족 모두의 <인감증명>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에서 인감증명을 떼려면 ‘직접’ 가서 인감을 신청하고, 인간신청이 완료된 경우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내 동생이 인감증명을 발급받으러 갈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럼 대리인이 발급받으려면?     


주민센터에서는 두 가지 경우를 가정하고 그에 따른 각각의 조건을 충족 시켜 올 것을 요구했다.     


이 사람이 사회적으로 의사능력이 있으나 단지 그 시점에서 거동이 불가하다는 의사의 진단서

혹은 이 사람이 사회적으로 의사능력이 없으니 대리인이 모든 사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서.          

2번의 경우를 '성년후견제도' 라 한다. 혼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재판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의 모든 일련의 상황을 가정하고, 동생에 대한 성년후견인을 신청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절차를 시작해서 끝날 때 까지 통상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진단서를 발급 받으려니 병원에서는 자신들의 병원에서 1년 이상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니까 아빠는 떠났는데, 법적으로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서류상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데, 가족관계증명서에 ‘사망’ 이라고 되어있는데!


남은 가족들이 그것을 증명해내고, 마무리하는데 2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법이 멀다느니 제도의 불완정이니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모든 절차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고 예외 적용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의 감정처럼 쉬운일이 아님을 이해한다.     

그냥,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보통’ 이 아닌 가정에서 유일하게 가방끈이 긴 ‘쓸데없이 잘난년’ 이라는 것이, 지독하게 무겁고, 힘들다는 것이다.     

나도 다른이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슬픔을 누리고 싶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참, 잔인하다.

산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가서 사는 일, 이 간단한 것 조차 고단한, 보통이 아닌 삶.


나는 솔직히 때때로 그만 살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무지 힘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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