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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염치의 세상을 살다.

by choijak


오래 전, 세무사 사무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통상 <담당> 하는 업체가 있고, 평소에 매출액과 비용 등을 장부에 입력해 두고 분기별로 업체의 세무신고 등을 대행해 주는 것이 주 업무였다.

부가세 납부 기간이 되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사장님, 부가세는 사장님 돈 아니에요.’ 였다.

부가세는 최종소비자가 납부하는 세금이다. 다만, 편의상 최종 판매자가 대신 받아두었다가 납부하는 것 뿐이지만 업주들은 그 돈을 ‘쌩돈’인양 아까워했다.


<**놈의 나라가 ** 세금만 뜯어간다.> 며 어떻게든 납부액을 줄이려 안간힘을 쓴다. 자세한 내용을 쓰자면 골치 아프니까 넘어가고, 대충 비용은 늘이고, 매출은 줄여서 세금액을 줄이려 한다.

이건 소득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용처리를 위한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온갖 마트 영수증, 옷 산 영수증, 여행 가서 쓰고 온 영수증을 모조리 들고 와 비용처리를 요구했는데,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뼈빠지게 사업하는데 남는 게 없단다. (마트가고, 옷 사고, 여행가서 쓴 돈, 그게 남은 거라니까.;;)

결정권이 있을리 없는 말단 직원인 나는 일단 가져오는 대로 입력해 놓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회사가 적자였다. (당연하지 않은가. 먹고 마시고, 옷 사고, 애들 학원 보내고, 자기 집 관리비에 온가족 핸드폰 요금까지 회사비용으로 집어넣은 판이니...)


그리고 나서 추후에 조절하는 것이다.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상사는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담당하던 회사 중에 제법 규모가 있는 목재가공업체가 있었다. 이 사장님은 단 한번도 존대를 한 적이 없다. 찾아와서도 반말이고, 전화를 받으면 ‘어, 거송(가칭이다.)’ 이 곧 ‘여보세요.’ 였다. 싸가지 하고는.


어느 날 이 사장님이 전화를 해서 ‘대출받아야 되니까 서류 만들어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요청한 대로 재무제표를 뽑아두었더니 바로 쫒아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서류를 열어보고는 ‘씨발! 매출이 이게 뭐냐!’ 하고 소리를 지른다. (니네 회사 매출을 왜 나한테 물으세요??)


“여기다 1억 쳐 넣어!”

“네?”

“일단 대출을 받아야 하니까 여기다가 1억 쳐 넣고, 만들어 놔! 가라(가짜라는 뜻이다)로 만들라고!”

“안 되는데요.”

“하라면 해!”

“저한테는 그럴 권한이 없구요. 세무사님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씨발, 그냥 니가 하라고!”

“제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제가 해요? 저는 그냥 지시에 따라 업무만 수행하는 사람이고, 저는 세무사님 지시받고 일하는 사람이지, 사장님 직원도 아니구요.”

“아, 씨발! 급하다고!”

“저한테 욕하셔도 해결 안 되고, 제 기분만 상해요. 그러니까 욕좀 그만 하세요. 세무사님은 오늘 일찍 퇴근하셨고, 지금 과장님도 휴가중이시라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사장님.”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내가 뭐라고 남의 회사 재무제표를 조작하나? 월급을 그 사람이 주는 것도 아닌데.


욕을 하고, 책상을 치고, 서류를 내 눈 앞에 들이밀어도 나는 요지부동이었다. 저는 모릅니다. 만 반복할 뿐. 결국, 그 사장은 씩씩거리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곧 퇴근 시간이었다. 휴가중인 상사에게 전화를 하기도 그렇고, 나는 내일 휴가라 내일 보고하기도 어려웠다. 이 상황을 어디까지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고민 중에 나보다 오래 근무한 경력많은 직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그 대답이 가관이었는데 ‘그냥 둬요. 굳이 보고할 필요 없어요.’ 라고.

요것 봐라? 내가 깨진다고 니가 잘되는 게 아닌데.....저 새초롬하게 모른 척 엉뚱한 대답 하는 꼴좀 보소.

(이건 사건의 핵심은 아니지만 생각하니 빡치네...)

결국 나는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한 문건을 작성해 과장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과장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리고 퇴근했다.


하루 휴가를 마치고 왔더니 과장을 통해 세무사에게 보고가 들어간 모양이다. 세무사는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줘서 고맙다면서 자기들이 해결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일 보라고 했다.

업무를 보고 있는데 점심이 지나 그 사장이 재등장했다. 매출액은 본인이 세금 덜 내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면서 미수금을 이유로 들며 축소했던 것이라, 지금 와서 수정할 수도 없고, 그렇게 만든 가짜 재무제표로 대출 받으면 세무사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이라 해 줄 수 없다고 설명을 하니 마지못해 수긍하는 눈치였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겠지만 세무사 사무소의 말단 직원 하나 쪼아서 가짜서류 만들면 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이런 저런 유동 자산을 끌어오고, 미수금 등, 빠진 매출을 증빙하는 서류를 꾸려 대출을 받게 해 주는 것으로 이 일은 끝났다.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내 일만 하는 나에게 ‘담당, 고생했어.’ 하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장은 은행으로 떠났다. 세금 낼 때는 적자투성이이던 회사가 대출을 받을 때는 더 없이 우량한 회사가 되는것도 황당한데 눈 하나 꿈쩍 안하고 그 대출이 나오든 말든 영향력 1도 없는 타인에게 쌍욕 박아가면서 위조서류 만들어 놓으라는 몰염치를 생각하면 아직도 입맛이 쓰다.

내가 친절한 직원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동네 수퍼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던 알바 아주머니가 그만두었다. 엄마와 친분이 있어서 사정을 흘려들었는데, 수퍼 사장의 사위가 사업이 시원치 않아 장모의 수퍼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정작 할 줄 아는 것은 없어서 겨우 카운터나 지키는 형국인데 그 사위에게 제법 많은 월급을 주다보니 부담이 된 수퍼 사장은 직원에게 근무시간을 줄여달라 요청했고 급기야 4대 보험을 둘씩 해줄 수가 없으니 알바에게는 4대보험을 못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근로기준법은 남의 나라 얘기인가 보다. 결국 아주머니가 일을 그만두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왔다. 근무시간도 늘었다. 사위가 아주머니가 하던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게 왜 소탐대실을 하십니까...)


2월 들어 동네에서 근무하시던 관리사분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서는 경비 겸 자잘한 단지 안 환경정비를 하는 분을 관리사라고 불렀다.


"코로나에 걸렸나? 무슨 일이 있나? 그 사람 계속 안보이네. "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말하기에, 내가 말했다.


“그만뒀을거야,”

“왜?”

“나 같아도 그 꼴 당하면 안 할 것 같은데?”


얼마 전 단지 안 출입구마다 <공지문>이 붙었다. <직원 관리에 관한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사항>이라는 제목이 이 붙은 종잇조각이었다. 대략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주민의 불만이 있을 시 직원을 징계하고 해고할 수 있으며, 직원이 휴가를 요청 시에는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하고, 휴일에도 ‘갑’의 요청 시에 ‘을’은 응해야 한다. 라는 것이 골자였다. 임금은 시급 9620원으로 한다. 라며 선심 쓰듯 적혀있었다.


이것은 자기 몫으로 월 30만원의 ‘수고비’를 챙겨가겠다는 회장이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하여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는 것으로 본인이 공동주택 관리에 ‘열심히’ 임하고 있음을 만천하게 공표하는 것이며, 최저임금 미만의 월급을 줌으로써 <주민들의 재산>을 지키고 싶지만, 법이니 어쩔 수 없다는 항변이었다. (전에도 일방적으로 급여를 낮추려다 실패한 적이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직원과 협의하면 된다고 하고 그 돈보다 적게 줘도 할 사람은 많다는 개소리를 낭낭하게 했었으나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 공고문을 직접 붙이고 다녔을 관리사의 입장을 생각하니, 내가 다 낯이 뜨거웠다. 그런데 그런 염치를 알 리가 없는, 하는 행동거지마다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회장 이하 임원진들은 그만둔 관리사를 두고 <괘씸> 운운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멍하다.




실업급여를 손보겠다는 뉴스가 나왔다. 뉴스의 보도 방향은 이러했다. 노동자들이 실업상태에서 받는 실어급여액이 (4대보험, 근로소득세, 교통비 등을 뺀) 월급 실수령액 보다 많으니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대기기간을 늘리고, 수령액을 줄여 실업상태가 편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언론사는 극단적인 일부의 사례를 들어가며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고 그러한 것을 바로잡는(?) 정부의 정책기조를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다. 그 기사에 줄줄이 댓글이 달렸는데, 나는 뼈 빠지게 일하는데 일하지 않고 돈 받아 먹는 염치없는 것들을 혼내줘야 한다는 댓글이 만선이었다. 진심인가? 그들은 고용인의 위치이거나 넉넉한 월급을 받으며 고용불안도 겪지 않는 직장에서 월급루팡 하는 선택받은 자들인가? 어쩌자고 타인의 사정을 ‘혼’ 내는 것인가?

최저 생할비 수준의 실업급여액보다 적은 월급의 실수령액이 문제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


아직도 산업현장의 많은 이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실상 최고임금으로 굳어진 최저임금을 받으며 혹시라도 재계약이 안 되면 어쩌나 눈치보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은 어쩌고 실업급여액을 줄이는 것이 노동 정책이라고 튀어나오고 자칭 노동자라는 사람들은 그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나는 좀 서늘하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인 어떤 대리는 몸이 아프다니 그 안타까움을 위로코저 50억원의 퇴직금을 지급했다던데 그것은 그저 부러울 뿐 분노할 일은 아닌가보다. 겨우 실업급여 받으며 6개월정도 여유있게 다음을 기약하는 것을 두고 나라를 망치는 역적이자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만악의 근원인양 댓글로 쌍욕을 박던 분들에게 묻는 것이다. )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인력거꾼이 끄는 인력거에 올라앉은 <구한말 친일파> 정부관료가 인력거꾼을 야단친다.


“더 빨리 달려라. 어찌 이리 늦는 것이냐? 이러니 굶는 게다. 이렇게 게으르니 굶는 것이다.”


올라탄 이가 끌고 가는 이에게 하는 말이다.



나의 이익이 어떤 가치보다 우선이고 타인의 사정이야 알게 무엇이며,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잘 사는 것이라는 세상에서 정작 최저임금은커녕, (교통사고시에 보험회사의 1일 휴업 보상액 최저 기준이라는)도시일용노동자에도 못 미치는 수입이 일상인 도시 일용작가 나부랭이는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퍽이나 어지럽다. 빈혈탓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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