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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Sep 14. 2023

그게, 네모반듯하지는 않아서.

집에도, 작업실에도 믹스 커피는 없다.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니 인스턴트 믹스커피를 굳이 사 두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나 가끔 달달한 인스턴트커피가 당길 때가 있다. 

그것도 카페에서 파는 커피에 시럽을 넣은 것과는 다른, 순수한 인스턴트, 공업(?)적인 단맛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편의점에서 파는 일명 <빨대 커피>를 마신다.


오늘도 그랬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빨대 커피를 사서 쪽쪽 빨아 마시며 작업실까지 걸어왔다. 

첫맛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지만 금방 양치를 한 탓이려니 생각했다.

‘살이 쪄도 너무 쪘는데, 이런 거 마시면 안 되지 않나?’ 슬쩍 죄책감이 들었지만, 즉각적인 쾌락 앞에 나약한 것이 인간 아닌가.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사르르 아팠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다. 

유제품을 먹고 화장실 직행하는 일이 ‘원투 데이’의 일이 아니라서 또 그런가 보다 하고,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마무리했고, 점심을 먹기 전에 간단히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나의 작업실은 주방 겸 현관이 좁고 밀폐된 환경이라 쓰레기를 오래 모아 둘 수가 없다. 

특히 음식물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냄새가 날 수 있어서 가능한 모든 것을 물에 씻어 버리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다 먹은 커피 용기도 헹궈서 보관했다가 분리배출 하는데, 오늘따라 이물질이 유독 많았다. 보통 물로 헹구기만 해도 깨끗해지는데 오늘따라 덩어리가 크다. 끈적끈적 들러붙은 커피 찌꺼기가 흡사 연두부? 치즈?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찌꺼기를 씻어내는데, 그제야 유통기한(요즘은 소비기한으로 바뀌었다.)이 눈에 들어온다.        

  

2023.09.07.      


??????




오늘은 2023년 9월 14일이다.     




하아....원효대사 해골물도 아니고, 쾌락을 한껏 느끼며 쪽쪽 빨아먹었는데, 걸레 빤 물을 삼킨 기분이다. 

그래서 설사를 했나? 괜히 배가 더 아픈 것 같다.

물건을 사러 갔을 때부터 주인아주머니는 지인과 수다삼매경에 빠져 손님은 안중에도 없더니만? 병원에 갔는데, 위가 어떻고 폐가 어떻고 하느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계산하더니!!!

매장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해당 매장 전화번호를 찾았지만, 홈페이지에 정보가 없었다.

결국 고객센터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고, 담당자가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     


괜히 ‘빡쳐서’ 편의점으로 갔다.      

여차저차 사정을 이야기하는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나를 단속(?)하더니 자신의 남편을 집안으로 들여보낸다. 그리고는 “그래서 뭘 사가셨는데?” 하고 공격적인 말투로 대꾸한다.      


참을 인을 새겼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했더니 ‘왜 그랬지? 환불해 줄게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남편이 아프니 알면 안 된다고, 자기 연락처를 줄 테니 병원을 가든 뭘 하든 자기랑 이야기하잔다. 


무슨 병원까지?     


그런데 환불을 받고 싶어도 나는 결제했던 카드를 안 들고 왔다. 그렇다고 현금으로 이천 몇백 원을 돌려받는 것도 우습고.     


어차피 고객센터에 문의 넣어놨으니 그쪽이랑 해결하겠다고 하고 매장을 나섰다.      

고객센터는 내내 감감무소식. 재차 문의를 한 후에야 담당자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는데, 이것 참. 

나의 예상과는 상황이 달랐다.    

 

나는 본사에서 해결하고, 추후에 가맹점과 알아서 처리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자신들은 중재만 할 뿐 보상은 가맹점과 구매자가 직접 협의할 문제라고 했다. 또한 전화를 건 담당자라는 사람도 그저 이 지역 매장을 담당하는 직원일 뿐, 클레임을 전담하는 부서의 소속이 아니다.     

 

결국, 사장님과 내가 해결할 일이다.     


담당 직원은 가맹점주와 마주치기 껄끄러우시다면 병원을 가서 진단서를 받아 병원비를 요청하거나 그게 아니라도 어느 정도 보상액을 제시하고 상대가 수긍하면 본인이 대신 입금한 후에 가맹점주에게 받겠다고 했다.


뭐가 이렇게 불편하고 어색한 시스템이지?  

가맹점주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담당 직원이 확인 후에 문자를 주겠다고 했고, 곧 번호가 도착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주인아주머니는 아까 매장에 들렀을 때 자신이 말실수를 좀 한 것 같은데, 말투가 그런 것이지 책임을 안 지려는 게 아니라며 거듭 사과했다. 당연히 자기 실수니까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병원비 청구하면 다 해주겠다고도 한다. 남편이 암 수술을 하고 그러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챙긴 모양이라며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본인도 이해가 안 된다고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말을 이었다.      


“사장님, 사장님은 저를 모르시지만 저는 가끔 그 편의점에 갔었기 때문에 사장님 얼굴을 알아요. 그전에 다른 브랜드 편의점 하신 것도 알고, 아까 남자 사장님 얼굴을 잠깐 뵈었는데 많이 야위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나중에 들를 테니까 아침에 결제한 금액 취소하시는 걸로 마무리하시죠. 커피하고 빵도 하나 샀었는데, 그냥 그거 전액 환불해 주세요. 빵 하나는 그냥 주신 셈 치시구요”     


주인아주머니는 정말 고맙다고 하면서 미안하니까 점심값이라도 챙겨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마무리하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 와중에도 자기 남편이 있는 시간은 피해달라고 거듭 부탁한다.      


이른바 '쿨'하게, 됐습니다! 하기에는 나는 속이 좁고, 그렇다고 커피값만 돌려받기에도 좀 억울했다. 그래서 빵 하나 공짜로 먹는 정도로 보상을 받았다.       

    

내가 멋지게 보이고 싶었다면 제 성질 못 이기고 포르르 쫓아간 이야기는 쏙 뺐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일명 ‘분칠’에 능하지만, 내 일상의 삐죽삐죽한 모라람까지 분칠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적당히 찌질하고, 옹졸하다. 그리고 꽤나 마음이 약하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서 약을 타온다.

작년, <원인불명의 간경화> 진단을 받은 이후 지금껏 계속되는 일이다.

그날도 병원에 가는 날이었는데 평소보다 일찍 나가는 통에 나가는 엄마를 놓쳤다.  아침 10시쯤 전화를 해 보니 이미 병원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어딘가 느낌이 ‘쌔’ 하다. 

내가 데리러 갈 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더니 웬일로 순순히 말을 듣는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엄마를 차에 태우고 무심하게 물었다.     

 

“병원에서는 뭐래?”

“큰 병원 가보래.”     


근래 들어 배가 더 많이 나오고 소화도 어렵다고 하더니 이번에 찍은 초음파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왜? 암 이래?”

“..... 그건 아니고 복수가 찼대.”     


엄마나 나나 말은 무심하게 던지고 있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의사가 대학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해서 집 근처 2차 병원에서 피검사를 다시 하고, 소견을 들었다.  

    

2차병원의 의사는 다니던 의원에서 가져온 초음파 영상을 보더니 복수가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며 일단 혈액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자고 했다. 다음 예약 때 확인한 혈액검사 결과 간경변은 명확한데, 역시나 원인은 불명(알콜성도, b형 간염도, c형 간염도 아니라는 뜻)이며 현재 상황은 이뇨제로 복수조절을 하면서 저염식을 하고,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이뇨제의 효과가 좋았는지 불룩했던 엄마의 배는 눈에 띄게 들어갔으나 그 부작용으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중이다. 병원에서 심각한 복수는 아니라고 했으니 이뇨제는 조금씩 줄이다가 끊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다행이다.  

    

이 병이 그렇다.

간경화(혹은 간경변)까지 진행될 정도로 망가진 간은 되돌리기 어렵고 결국 간이 제 기능을 못하니 배에 물이 차고, 물을 빼느라 이뇨제를 쓰게 되면 신장이 망가진다. 그러면서 장기가 차차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에 따라 생의 여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혈액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다행히 엄마의 상태는 몇 가지 부분을 제외하고 심각하지 않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환자의 가족이 되면 반의사가 되는터라 혈액검사지 정도는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엄마는 또 하나의 작은 언덕을 넘었다. 




엄마를 버스정류장에서 태우고 당장 2차 병원에 데려가고 최종 결과지를 받아 든 어제까지 며칠 동안  속이 시끄러워 일이 손에 안 잡혔다. 핑계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하루종일 밀린 드라마나 보면서 쉬었고, 오늘부터 다시 일손을 잡은 참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임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마음을 잡는다.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하기에는 남아있는 나의 삶도 그리 길지 않고 누구보다 빼곡하게 살아야 겨우 본전 치기라도 해 볼 참이니.      

언덕을 넘을 때마다 자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편의점 사장님이 구구절절 남편 이야기를 할 때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할 수 없었던 것은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삶이 네모반듯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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