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oijak Sep 18. 2023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

13000보를 걸었다.


걷는 것에 마음을 둔 지 한 달을 좀 넘긴 것 같다.

가을비가 제법 세게 내린 며칠을 제외하고는 평균적으로 5천에서 6천 보정도를 걸었다.

집에서 작업실까지 10분 남짓을 오가고, 저녁을 먹고 근처 체육공원 트랙을 10바퀴쯤 돌면 어떤 날은 1만 보를 넘기거나, 8 천보쯤에서 멈추기도 한다.

사실 새벽에 일어나 호숫가를 달리고 싶었는데, 부러 운전해서 10분을 가서 달리는 일은 지속하기 어렵다 생각했다. 그래서 욕심을 덜어내고 가까운 곳에서 꾸준히 걷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시내(그렇다. 서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시골 사람들만 아는 ‘시내’라는 곳이 있다.)에 갈 일이 있을 때는 차를 가져가는 편인데, 오늘은 그냥 걸었다. 미리 예상하고 나선 것도 아니었고, 택시를 타기엔 택시 요금이 아깝고 버스를 타려니 교통카드가 되는 카드를 두고 왔다. 현금은 달랑 천 원뿐이었고, 손에 쥔 카드는 교통카드 기능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걸었다.   

  

긴 팔 맨투맨 티셔츠와 롱스커트를 입고 나섰는데, 덥다. 무지 더웠다.

가을 햇살이 무섭다. 모자라도 쓸 걸 그랬나? 치마 대신 반바지를 입을걸. 무슨 날씨가 이렇게 철이 없어?   


볼일을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와 오늘 마무리 지으려 했던 파일을 열었는데, 맥이 쪽 빠져버렸다.   

결국 한 자도 더 쓰지 못했다.


괜히 걸었나?     

걸음을 탓할 일이 아니지만, 애먼 걸음을 탓해본다.     

불쑥 밀려오는 불안과 허탈함이 숙명인 듯 받아들였다가도, 맥이 쪽 빠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무언가 굉장히 잘못된 것 같은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허기가 지는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다.

살이 많이 쪘는데도, 그냥 굶으면 좋을 텐데도 유독 허기가 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엄마가 병원에서 처방받아왔지만,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탓에 먹지 않고 빼 둔 이뇨제가 있다.

솔직히 한 두어 알 집어먹을까 생각했다.

근거라고는 1그람도 없는 생각이지만 피둥피둥 쪄 오른 내 살이 살이 아니라 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먹어볼까?      


이런 생각이 얼마나 무신경한 발상인지 잘 알고 있지만 사람이란 본래 저밖에 모른다.

원인불명의 간경화를 진단받고 복수 조절을 해야 하는 엄마가 어지러움 때문에 복용을 중단한 약을 두고 나는 저걸 먹으면 몸무게가 좀 줄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처럼.     

굳이 덧붙이자면 현재 나의 엄마는 약을 중단해도 될 만큼 적은 양의 약으로도 복수 조절이 잘 되었으므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뇨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다. 내 살 빼보겠다고 엄마의 약을 욕심 내는 정도로 막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나날이 살이 찌는 내 몸을 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것들이 다 엉망진창이 되더니 남은 것은 그냥 이 비만의 몸뚱이 하나뿐이구나 싶어서 몸만큼 마음도 무거워진다.

나는 지금 BMI 수치로 명백한 비만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또 걸었다.

최근 새로운 걷기 코스를 찾아냈다.

존재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규모가 커서 엄두가 안 났던 체육공원이다. 낮은 산자락에 조성된 공원은 마치 둘레길처럼 야트막한 산자락을 휘돌아 나간다. 그 둘레를 한 바퀴 돌면 내가 주로 걷는 트랙을 여섯 바퀴쯤 도는 셈이다.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것에 슬슬 질려가던 차에 이쪽으로 노선을 틀었다.     

몸이, 마음이 무거워서 내키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자니 또 울화가 치밀어 한 바퀴만 돌기로 했다.


                         



하늘이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친구가 은근히 백 자랑을 할 때, 진심으로 부럽지는 않았는데 돈이 있었으면 아마 나도 샀겠거니 생각했다. 중형차 이상의 세단이나 SUV를 타는 지인들 틈에서 ‘나도 큰 차 좋아하는데.’ 생각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만난 드라마를 보는데 엔딩 스크롤에 극본 아무개가 뜨고, 그 이름이 내가 알던 그 친구들의 이름일 때, ‘아유, 씨발.’을 낮게 읊조렸다.      


한 때는 그저 빈산이었던 곳에 반짝반짝하게 들어선 체육공원을 터벅터벅 걸으면서, 한 때는 과수원이었던 곳에 올라간 36층짜리 아파트를 바라보며, 그곳에 사는 나의 옛 친구를 떠올린다.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그저 불행이라 하였지만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변해갈 때, 여전히 맥없이, 답 없이 걷기만 하는 나를 그저 존중함이 옳은가?

모르겠다. 답을 알면 이렇게 글이나 쓰고 있을 리가 없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오늘 13000보를 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를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