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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07. 2023

사실, 보라색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익숙하지 않아서.

                



제 카톡 프로필입니다.


"짙은 보라색, 독을 품고 살다."




독(毒)을 짙은 보라색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맹독을 가진 ‘투구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보라색의 삶, 독을 품고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래에 몇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일단 헐레벌떡 호들갑을 떨면서 마감을 준비했던 일이 있었는데, 제가 일정 확인을 잘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다음 일정과 타이트하게 붙어있다 보니 욕심과 현실이 뒤엉켜, 더더욱 여유가 없습니다. '헐레벌떡'에 변화는 없다는 뜻이죠. 그러나 멍청한 것은 분명합니다. 에유, 멍충이.   




  

일적으로 연을 맺은 분께 받은 메시지입니다. 다른 자리로 옮겨 가시면서 작별 인사를 하셨기에 제가 그간의 감사를 전하는 답을 드린 후에 재차 저런 답을 해 주셨습니다. (물론 그냥 인사일 테지만, 그래도) 이럴 때는 기분이 좋으면서 묘해요. 그러면서 저 혼자 ‘어쩌면 나는 장점이 많은 사람인데, 참으로 게으르고 겁이 많았다.’는 자뻑과 회한이 동시에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들어온 일을 하나 거절했습니다. 

솔직히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지만, 저 지금 되게 가난하거든요. 9900원짜리 배달 떡볶이로 세끼를 먹습니다. 또르르... (ㅎㅎ 사실 이건 제 뱃속 사정 때문에 지금 뭐든 많이 못 먹어서 그렇습니다. 너무 딱하게 보지는 마세요.) 아무튼 넉넉지 않은 형편에 배가 불러도 한참 불렀지 감히 제 발로 굴러 들어온 일을 거절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고료를 ‘싸게’ 불러서요. 물론 제안을 한 분도 악의는 없고, 현 상황에서 최선이었을 겁니다.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면서 일단 일이 잘 되면 더 챙겨주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길게 고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내가 들여야 할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다른 작업을 못 하는 것을 감안할 때,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구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대충’ 해서 일단 끝만 보자고도 하셨지만 제가 ‘대충’을 못합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갑님이 일정을 미루고 미뤄 마감은 코앞인데, 대충 할 수는 없어서 저 혼자 새벽 4시까지 원고를 쓰다가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순간에 다 때려치우고, 갑님에게 메일로 결별(?) 통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알바를 할 때도 그랬고, 잠깐의 직장생활도 그랬고, 저는 태생이 ‘대충’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마 심리적으로 폐끼치기 싫어하는 결벽적 노예근성 비슷? 한 그것일 겁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또 제가 여태 무명작가예요. 성향은 이런데 능력치가 그 간극을 채우지 못하니 늘 1차 커트라인(저 자신)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내 눈에도 재미가 없는데 남들 눈에는 어떻겠습니까. 저는 <완벽주의적인 멍충이.>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거절하고 나서 조금 후회했습니다. 아, 그 돈이면... 떡볶이가 몇 그릇이여??

그냥 적당히 해주고 받을걸 그랬나? 머리가 딱딱 아프더군요. 가난이 이래서 무섭습니다. 헐값에 나를 내다 팔고 싶어지거든요. 사실 서로가 아는 이야기이지만 말하지 않는 지점이 있는데, 더 많은 돈을 줄 것이라면 검증된(이름 있는) 작가를 쓸 것이고, 그럼에도 내게 부탁하는 것은 적은 돈을 들이지만 결과물은 가성비 넘칠 것이라는 상호 간의 이해와 합의인 것입니다. 제가 그 틀을 박차 버렸습니다. 간 크게도. 늙은 무명작가가..(미쳤나???)




까마득한 옛날, 학원강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요. 삼겹살로 회식을 했습니다. 큼직한 상추를 손바닥 위에 놓고 그 위에 깻잎도 한 장 얹어 잘 익은 삼겹살 한 점과 쌈장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생마늘을 한점 톡 얹는 순간 앞자리에 앉은 ‘원장새끼’가 한마디 거듭니다.  

   

“어이구, 최 선생님. 생마늘을 그냥 드셔요? 참 독하시다.”     


뭐라는 거야? 내가 가져가는 1000만 원은 포기할 수 없으니 (혹시 학원이 계속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므로) 선생님들 월급은 올려드릴 수 없다. 고 반질반질하게 말하던 너보다 독할까?

물론 말은 안 했습니다. 통장의 숫자는 소중하니까요. 원장은 통장을 채워주니까요.      

그저,  말없이 생마늘을 오도독 오오 독 씹을 뿐.     


그러나 저는 독한 사람이 못됩니다. 생마늘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일 뿐이고, 당시 남자 친구도 없었기에 생마늘 먹는다고 급하게(?) 큰일 날 일이 없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생마늘 오도독 씹어먹은 날 원장 빼고 강사들끼리 2차를 갔고, 어린 남자 강사가 술에 취해서 ‘누나. 가만히 보면 은근히 귀여워요.’라고 했습니다. 이것봐요. 그러니까 제가 독하기는요. 말랑하고 귀엽기만 한걸요. (어차피 다들 저 모르시잖아요.)          


그런데 독하게 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마늘 백 개라도 씹어 삼켜야겠다 생각합니다. 눈하나 꿈쩍 않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면응시해야겠다 생각합니다.      

물론 남에게 못된 짓을 하고,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사는 소시오패스가 되겠다거나(이건 결심만으로 될 영역이 아니겠지만), 악을 행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 앞에 놓인 것들 앞에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남의 일)은 그렇게 완벽하게 했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나의 인생에서는 그토록 말랑했던, 나에게 지독하게 관대했던 나를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한번 하면 ‘대충’은 안 했지만 그 한 번이 어려웠던 온갖 타협들, 핑계들 그만 내다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평생, 말랑하게 살았으니 남은 생은 짙은 보라색으로 살아보려고요. 


         



아, 그 사이 위경련이 크고 작게 몇 차례 더 일어났어요. 응급실까진 가지 않았지만 허용 용량의 세배나 되는 진경제를 털어 넣고 버틴 날도 있었고, 동네 의원에서 링거를 맞고 온 날도 있었고, 아주 짧게 지나간 날도 있었지만 더는 미룰 수가 없어서 급한 일정만 끝내놓고 이 달 안에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뱃속은 일단 그렇고요.     

그 밖에도 손목, 허리, 무릎, 머리 등등 멀쩡한 데가 별로 없.....;;;

지금도 허리에 찜질팩을 감고 앉아있습니다.                


세상 좋아졌습니다. 전기만 꽂으면 뜨끈! 한 찜질팩이...



해 짧은 겨울날, 毒한 것은 모르겠고 獨하기는 하네요.           

지금 삶에 서툰 최작가는 몸속은 시한폭탄이고, 머릿속은 핵폭탄이라 이번 글은 답글 창을 살짝 닫습니다. 그러니 가벼이 읽고, 스윽 지나가 주셔도 감사합니다. 숨 쉬러 왔어요.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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