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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Nov 17. 2023

좋은 날이 많을 거야.

11월 초, 새벽 응급실 행 이후 내내 쓸개를 떼내마네 하느라 몸도 마음도 분주했습니다. 

최근 다시 진료를 받았고 병원에서 말하길, 담낭에 담석이 많고, 담낭벽의 모양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즉, 현재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이런 양상을 보이는 경우 언제든 담낭염이 재발할 수 있고 향후 더 나쁜 케이스로 발전할 수 있으니 담낭절제술을 받는 것이 좋다고 하더군요.     

일단 응급은 아니라서 음식 조심하고, 금주, 금카페인 하며 조금 더 지켜보다가 쓸개는 없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날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데 유난히 공기가 맑더라니, 마스크를 안했더라구요. 

(병원급은 아직도 마스크 착용이  의무입니다.)     

‘ 아, 마스크!’ 하면서 걸음을 되돌려 차에서 마스크를 챙겨서 손에 달랑달랑 들고 걸어가는데 병원 입구에 노부부가 뭔가 분주하게 서계시더라구요. 멀리서부터 <마스크가 없어서 못 들어가. 큰일이네, 이거.>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할머니는 마스크를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마스크가 없는 모양입니다. 정작 할아버지는 평온(?)하신데 할머니가 몸이 다셨어요. 그런 할머니의 레이더에 제가 잡힌 것이 느껴집니다. 속으로 생각했어요.      


‘지금, 내 손에 들린 마스크는 저분들께 가겠구나.’    

 

제가 가까워지자 할머니께서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십니다.     


“저기, 아가씨. (이게 중요합니다. 아줌마가 아니라 아가씨!) 혹시 마스크 여분이 있으면 하나만 줄 수 있을까요? ”     


예상했던 바, 기꺼이 드렸습니다. 게다가 아가씨라잖아요. 아줌마. 애기엄마. 심지어 ‘어머님’ 도 들어봤는데. 마스크를 드리면서 혼자 생각했습니다.     


‘나 아침부터 소박하게 좋은 일 했어. 작지만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그렇게 진료를 봤더니 담석이 있고, 언젠가는 쓸개를 떼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왕 금식하고 나선 김에 미뤄두었던 위 내시경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니던 내과에 당일 위내시경이 가능한지 전화를 했습니다. 가능하다고 해서 당장 출발했습니다. 이런 세상에! 늘 만차라서 단 한번도 주차를 하지 못했던 내과 건물 주차장에 주차자리가 있어요! 좋은 날입니다. 

그리고 내시경을 했는데 염증 하나 없는 예쁜 위장을 보았습니다. 좋은 날입니다.


응급실에 다녀오고, 아파서 빌빌거리고 그러다가 얼떨결에 소식을 하게 되고 그간 야간에 유유나 커피 마시던 습관도 없어졌고, 하루 다섯잔까지 마시던 커피도 못 마시고 있습니다만, 덕분에 그토록 갈망하던 그것을 얻었습니다. 아니 제가 살이 빠졌습니다!!!!          


나날이 좋은 날이 아닐 수 없어요.



          

준비하고 있는 일정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마감일이 빨라졌어요. 결과는 내 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라 잠시 멍! 했습니다. 그러나 되든 말든 내야합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정면으로 얻어맞아야 회복이 빠릅니다. 실은 제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늘 마지막에 포기하고 ‘다음 기회에 더 완벽하게 잘하자.’ 하다가 망해 먹고 공장문 닫고 폐인 되었던 전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일단 하는 것으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 순간 나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사실 세상에는 언제나 열려있는 다음 기회라는 것은 없어요.


솔직히 진심 코앞에 닥친 일정을 오늘에서야 확인한 ‘멍충한’ 나 때문에 멘붕이 왔습니다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행운이지 모야.’ 라며 위로와 격려를 건넵니다.      


이제부터 공장 풀가동 하러 가야 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 눈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말끔하게 개었네요. 

잠깐 첫눈이 쏟아지던 순간에 속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자네, 쓸개는 없어질테지만 좋은 날이 많을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숨기며, 더불어 약간의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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