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씨 영하 17도. 그 추위를 뚫고 요가원에 갔었다.
간만에 요가를 하러 간 건 아니었고, 다른 일이 있어서 집 밖으로 나선 김에 다녀온 것이다.
요가원에 두고 온 개인매트와 용품을 챙겨 와야 했다. 그냥 버리고 말까 했지만, 옛말에 땅을 파본들 10원 한 장 안 나온다고 하지 않나. 짐을 챙겨 나오면서 선생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 정말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됐어요.”
요가원에 가지 못한 것이 아마 10월부터였을 것이다. 마침 허리가 너무 아파서 동작을 따라 할 수가 없었고 (게다가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11월부터는 쓸개와 관련된 질환으로 내내 컨디션이 바닥인 데다 담석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위경련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통에 뭐든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작년에 호기롭게 1년 등록을 해 둔 요가원은 본전은커녕, 절반도 못 건지고 그만두게 된 것이다. 용두사미.
사실 나의 삶이란 내내 용두사미였음이다.
자손이 귀한 집에 태어난 외동딸(동생과 11살 차이니 유년기의 정체성은 외동딸이었다.)은 날렵한 생김새에서 주는 기대감과는 달리 신체 발달의 모든 것이 늦었다. 심지어 여자아이인데 머리칼도 없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묶어주고 싶어도 묶을 머리가 없었단다. 걸음이 남들보다 늦은 것은 물론이고 달리기도 못해, 툭하면 넘어져서 울고 들어오기 일쑤에 손에 들린 모든 것은 깨 먹는 ‘파괴손’이라 어릴 때 엄마와 장을 보고 올 때도 내 손에 비닐봉지 하나를 쥐어 주지 못했다. 바닥에 떨궈서 깨 먹거나 터트리거나 부술 테니까. 혹은 가벼운 무엇이라면 분명히 놓쳐서 흙바닥에 나뒹굴게 할 것이 자명하므로.
그런 내가 유독 말과 글은 빨랐다. 다만,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대화하는 것에는 재능이 없으니 저 혼자 상상하고 처박혀 있는 것이 적성에 맞았을 것이다. 지금은 좀 시끄럽다. 본성은 아닌 것 같고 훈련된 발랄함이라 해야겠다. 그래서 아무 때나 '발랄한' 부작용이 있다. 이을 테면 당황하거나 어색할 때 ‘깨발랄’ 해지는 것.
그리고 간혹 발랄해지는 글재주로 간간히 밥을 벌어먹고 살았으나 뜻한 바와 달리 끝을 맺지 못하고 노트북 안에 잠든 파일이 셀 수도 없다. 나는 수없이 뜻을 품고, 수없이 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용두사미인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다음 주쯤에 수술대에 올라있어야 할 텐데 사람일이 뜻대로 되던가. 일정에 밀려 수술은 다음 달로 미뤄졌다. 몸상태가 멀쩡하다면 별일 아니겠지만, 사실 지금 나는 ‘버티고’ 있다. 먹는 것보다 굶는 게 편해서 거의 굶고 지내거나 죽으로 삼시 세끼를 먹다가 ‘죽’ 소리만 들어도 죽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엊그제 '한 조각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서 집어 먹은 냉동실의 피자 한 조각에 또 탈이 나고 말았다. 숙취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끝없는 울렁거림과 지근하게 죄어오는 명치 통증. 한 달쯤 전, 배달의 민족에서 도미노피자 만원 쿠폰이 뜨는 바람에 뭔가에 홀린 듯 시킨 피자였다. 그때도 먹고 탈이 나서 남은 것은 고스란히 작업실 냉장고에서 꽁꽁 얼고 있었다. 나는 그냥 가난이 몸에 배어 그것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괜찮겠지.’ 라며 집어먹고 영락없이 아팠다.
또또 소탐대실이다. 세상에 빤히 안 괜찮을 것을 알면서도 ‘괜찮고’ 싶은 가난한 마음이다.
그 덕에 피자값의 두 배에 달하는 병원비와 약값이 들었다.
수술을 생각하고 새치염색을 하지 않았다. 말끔하게 돌아와 한 번에 해 치우려고 했는데, 일정이 미뤄지니 덩달아 머리가 백발이 되고 있었다. 2년 전에 갑자기 들이닥친 새치는 유독 앞머리에 옹기종기 모여서 세를 과시하니, 그냥 둘 수가 없는 형편이다. 가뜩이나 이래저래 우울하고 처지는데 하얀 머리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결국 미용실에 앉았다. 염색전문점이다. 다른 시술은 하지 않고 염색만 하는데, 시설도 깔끔하고 가성비도 좋은 것 같아서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원장은 내게 ‘머리 잘 안 빗죠?’ 하고 돌직구를 날린다.
“네. 파마머리라서.”
“그래도 브러시로 한 번씩은 빗어줘야 머리가 안 상해요.”
“아, 네.”
“아기 키우고 하다 보면 정신없긴 하지.”
“(애기?)”
“그래도 빗질은 한 번씩 해야 해. ”
“(음.... 뭐라고 해야 되지. 있지도 않은 애기를 어쩐다?)....... 저 애 없어요.”
“어머! 애기도 없는데 왜 그랬어어”
이 원장님은 빗질이 지상최대의 과제인가 보다. 애기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라면 빗질하지 않는 머리는 용납이 어려운 것이다.
“음... 저를 애기엄마로 보신 거 보면 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신 모양이에요.”
“몇 살인데요? 삼십 대 초중반 아니야?”
“..... 낼모레 오십인데요.”
뻔하디 뻔한 칭찬과 놀람과 왜 시집가지 않았는지와 그래 혼자 사는 자유도 좋다의 맥락 없는 대화가 구천을 떠돌았다. 어느 정도는 립서비스였겠으나 어리게 본다는데 썩 기분 나쁠 일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원장님이 불쑥 폭탄을 던진다.
“근데 이뻐서 남자들이 그냥 뒀을까?”
이쯤에서 바로잡자면, 나 안 예쁘다.
내가 셀프콩깍지 씔 만큼 양심리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비하가 심해서 자신감 바닥 찍고 뭐 그렇지도 않다.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명백히 미인상은 아니다.
‘이뻐서’ 가만히 안 둘 미모가 아니라는 뜻이다.
아유, 안 예뻐요,라고 답하면 답 없는 ‘예뻐요.’가 돌아올 것이다. 이건 뭐 중 장년 여자 둘이 앉아서 검증할 길 없는 올려치기 하는 재미없는 그림 아닌가.
“....... 애는 멀쩡한데, 돈이 없어서요. 돈 없는 여자는 남자들도 싫어해요.”
장내가 잠시 숙연해졌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의이거나 타의이거나 지금의 나의 외로움은 상당 부분 금전적 궁핍이 불러온 결과물이다.
가까웠던 이들이 삶에서 여유를 찾을 동안 나는 내내 위태로웠으니 그 관계인들, 유지될 리가 없지 않은가.
현대사회의 유유상종은 사회적 입지와 그에 뒤따르는 통장잔고와 맥을 같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내 소화를 못 시켜서 괴로워하고, 음식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이러고 있자니 이게 무슨 미련한 짓인가 싶다. 얼른 수술부터 해 치우는 게 맞겠지만 회복시간까지 고려하면 꼬박 한 달은 병상행이다.
기회의 시간은 정해져 있고, 나의 시간은 유동적이니 내가 맞춰야지 어쩌겠는가.
그리고 나에게 다음은 없을 것 같았다.
용두사미와 소탐대실로 살아온 업보다.
며칠 전에 엄마와 잠시 다퉜다.
그날따라 컨디션이 처져서 기어들어가다시피 했는데, 엄마가 나더러 저녁을 '해' 먹으란다.
내 입맛에 맞는 반찬은 내가 더 잘하니 알아서 해 먹으라는 뜻인 줄 내가 모르지는 않는데..
'알았어. 근데 오늘은 너무 아파.'라고 했는데 돌아온 답이 '나도 아파. 여기고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누군 안 아프냐' 다.
우리 엄마 특유의 발버릇이다. 악의는 없고 그냥 평생 서러움이 몸에 밴 말투다.
그냥 '얼씨구' 하면 '절씨구' 하는 추임새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참 외롭더라.
"어쩌면 엄마는 내가 아프다고만 하면 본인이 더 아프대?"
방문을 닫고 들어가 저녁을 굶었다.
노인네는 미안하면 화를 내는 버릇이 있다. 문 밖에서 노인네의 타령이 들린다.
알지, 아는데... 40년을 넘게 살아서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근데 나는 누가 이해해 주나?
'시바, 더럽게 외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