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치킨' 이 먹고 싶었습니다.

by choijak


'치킨'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치킨' 이 먹고 싶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갑니다.

며칠 전 그날도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었구요. 병원 진료를 마치고 나오니 11시쯤 됐더군요.

사실 배가 안 고팠고 저는 제 작업실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형식상 엄마에게 밥 먹을 거냐고 물었더니 ‘마음대로 해.’ 라고 합니다.


노인들의 ‘마음대로 해.’는 ‘하자’ 는 뜻입니다,

알아두세요. 노인들이 하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가까운 막국수 집에 가서 막국수를 먹기로 했습니다.

그 집은 막국수에 사이드로 치킨을 팝니다.

응? 뭐가 메인인가???

아무튼 간판이 막국수니 막국수가 메인이고 치킨이 사이드가 맞습니다.

매콤한 막국수에 치킨을 싸먹으면 맛있거든요.

그래서 치킨 반마리만(반마리도 팔아요) 시키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 못먹는다면서 극구 반대를 합니다.

그래도 남은 거 싸가면 된다고 했으나 역시 완강합니다. 투덜투덜. 먹지도 못하는 걸 시켜서....길어집니다.

아, 또 시작이구나 싶어 그냥 입을 다물기로 합니다.

그러나 노인네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붙이고 맙니다.


“**이는 나와서 먹지도 못하는데!”


(참고: 동생입니다. 중증 장애인입니다. 집에 도와주시는 분과 같이 있습니다. 자력으로 못 걷습니다.)


어쩌라구요?

이쯤 되면 싸우자는 겁니다.

나는 내 시간을 내서 병원에 다녀왔고, 딱히 밥맛이 없었지만 굳이 먹고 싶다는 엄마의 뜻을 물리지 못했고, 그래도 기왕 나온 김에 그냥 평범한 식사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때 조차 나는 동생을 생각을 해서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말아야 합니까?

자식이 애틋한 건 부모의 몫이지 그 아이 때문에 매번 뒤로 밀리는 내 몫은 아니잖아요.


요즘 들어 그 문제로 스트레스 상황을 몇 번 말했던 터라 엄마는 내심 또 제가 괘씸해졌나 봅니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입을 꾹 다문 채 막국수를 구겨 넣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멈출줄을 모릅니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려는데 굳이 한 마디를 보탭니다.


“너는 너만 생각해!”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습니다.


“어. 나는 나만 생각해. 세상에 내 편 들어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내 생각 해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나라도 나 챙겨야지. 그게 뭐 잘못됐어?”




제가 좀 아팠습니다.

몇 달 전에 ‘입이 돌아’ 갔습니다.

‘구안와사’ 라고 부르기도 하고 ‘안면신경마비’ 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런 병에 걸렸습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너무 피곤해서 몸을 가눌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다시 자려다가 양치라도 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양치를 하다보니 입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가고, 눈도 한쪽만 감기고 있더군요.


20170113103350-tmp.png 이런겁니다.

마비된 쪽은 쳐지고, 근육이 반대쪽으로만 당겨져서 입꼬리가 반대쪽으로 딸려갑니다.

사진 상 왼쪽이 마비된 쪽, 오른쪽이 정상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사진 속 저 분 보다 더 심했습니다. 좀....추했어요. )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운전해서 병원을 갔고, 가는 동안 증세는 점점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다 손 발도 마비되는 건 아닌가 혼자 무서웠는데 병원에 도착할 때 까지 별 탈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뇌’의 문제는 아니고 안면 신경이 마비된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두 가지의 선택지를 주더군요. 하나는 약물치료를 하는 것, 또 하나는 입원 치료를 하는 것.

초기에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주사로 맞는 것이 치료효과가 좋은데, 그러려면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잠시 망설이다가 입원치료를 택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빠른 치료효과를 기대한 것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이런저런 설명 필요 없이 공식적으로 어딘가에 뚝 떨어져 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입원했습니다.


물론 자신이 태어나 몇살에 어디로 시집가 보니 시동생이 고작 열 살이더라는 이야기부터, 남편이 맨날 장어꼬리만 처먹고 다니더니 바람이 났더라는 이야기를 거쳐, 그제 밤에 감자전 구워먹은 이야기까지 하는 옆 침대 할머니의 인생사를 들어야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는 산발에다 입은 점점 돌아가서 거의 못생김의 절정을 찍었을지언정 마음은 꽃밭이었습니다. 야속하게도 3박 4일만에 집으로 돌아왔고,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은 그대로였습니다.


이후로도 계속 치료를 받아서 얼굴은 이제야 거의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겉으로는 표시가 안 나는데 저는 느끼는 불편함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뻣뻣함이 심해지면서 안면이 굳어버리는 후유증(혹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의 저 일로 제 얼굴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신경과 의사가 참 예민하셔서 빨리 발견했다고 한 증상이 ‘귀’가 예민해지는 것인데요. 이걸 알아채는 환자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저는 단박에 알아챘고, 그 와중에 혹시 제가 말을 못하게 될까봐 증상을 타이핑 해서 가져갔었는데 의사가 ‘귀가 예민해졌다.’ 는 구절을 읽더니 놀라더군요.


그렇듯 남들은 잘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변화를 저는 좀 예민하게 알아채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 귀가 또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이걸 타인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단박에 나빠진 걸 알겠더군요. 그 기분 나쁜 느낌이 스멀스멀. 지릿지릿.


이러다 또 입이 돌아가면.....? 뭐, 가관이겠군요.




내가 얼마를 벌든 그냥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그게 아니라도 엄마에게 용돈을 턱턱 주는 딸이었다면 이런 어긋난 갈등을 면할 수 있었을까요. 조금이라도 미안하거나 고마워했을까요. 나의 시간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귀하게 여겼을까요.


세상사 내 맘 같지 않죠. 저는 나름 섬세한 사람입니다. 제 몸상태에만 섬세한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섬세하게 보고, 행동하는 편입니다. 상대가 무심해서 잘 모르거나 당연한 줄 아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나 딴에는 배려를 해도, 상대는 모르거나 호구인 줄 알 때가 많습니다.

뭐, 그러려니 해요. 그런데 엄마까지 그럴 건 없잖아요?


거듭된 실패로 남은 건 ‘텅장’ 과 망가진 몸 뿐인 나는 그날 참 지독하게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모녀는 서늘합니다.

엄마는 다 크다 못해 늙은 딸이 ‘치킨 하나’ 때문에 그런다 야속해 하겠죠. 이 속내를 어찌 알겠습니까. 알 거라 기대도 없고, 알려줄 생각도 없습니다.

이러다가 또 무심한 듯 일상의 대화를 나누겠지만, 이번에는 얼어붙은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방향을 틀자.




꼭 그 일이 아니더라도 저는 내내 고민이 많았습니다.

엄마와의 일이 트리거가 된 것이기도 하고, 다른 일도 좀 있고 해서 저는 뒤늦게 삶의 방향을 틀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좋아하던 책이 물에 젖은 적이 있습니다. 그걸 살려보겠다고 다리미로 다렸습니다.

한번 젖은 책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련하게 그걸 다리고 또 다리고.

그래서 그 좋아하던 책은 어찌 되었는가? 다려서 버렸습니다. 하. 하. 하.

일단 해 볼 만큼 해 보는 것도 맞지만, 안 되는 짓에 미련하게 매달리는 것은 바보짓인 걸 그때는 몰랐나 봅니다. 한 석장쯤 다려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버렸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지금 제가 생각한 방향대로 간다면 내년쯤 다시 인사를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때도 브런치가 있으려나?

스치다 이 글을 만난 분들, 좋은 날들 보내시구요.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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