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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Sep 25. 2019

어느 겨울-참으로 지랄 맞았던 지리산

10년전 쯤에.

나는 지리산에 올랐다.

무려 지리산을 올랐다.




나는 교과과정 중에서 수학 다음으로 체육을 싫어했고, 타고난 ‘체력’이라는 것도 0에 수렴하는 사람이다.

<체력은 국력> 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접하면서 자란 세대이기도 한데, 그  문장을 접할 때마다 나는 국익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초체력도 바닥인데다 운동은 고문으로 느껴질 정도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난데없이 지리산에 가겠다고 설친 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즈음의 겨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마냥 귀여운 나이건만...)


거창하게 ‘내 반드시 저 산을 오르리라.’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고, 그냥 뭔가를 마구 해보고 싶어서 산을 가겠다고 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지리산’ 을.

평소 나의 행실에 따라 등산장비가 있을리 없었으니 당장 시내 등산용품점에서 급히 등산화를 하나 샀다. 그리고 메던 가방에 입던 옷을 입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친구 하나를 섭외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것으로 치면 나 못지않은 친구인데, 때마침 이런 저런 심경의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라 감사하게도 덥석 따라나서 주었다.


(그때 즈음 우리는 마음이 좀 '그랬다'. 그리고 그 ‘그럼’ 이 늘 반복될 줄은 아직 몰랐던 때였다. ‘그런 마음’ 이 살면서 계속 반복되는 줄 알았으면 그 감정에 붙잡혀 있지 말고, 흘려보내는 법도 조금 일찍 배웠겠지만, 사는 게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     




산이라고는 타본 적이 없는 인간 둘이서, 덥석 기차에 올라 새벽에 전라도 어느 땅에 내렸고, 이렇게 어느 땅 이라고 밖에 쓸 수 없는 것이, 지금은 그 기차역의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기차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사람들이 우르르 타는 버스를 덩달아 따라 타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아마도 노고단 어디까지인가? 대충 중턱까지 올라가는 버스였다.


‘중턱까지 버스라니! 이거 너무 날로 먹는 것 아니야?’ 하면서 내심 싱거운 기분까지 들었다.

덜렁덜렁 동네 뒷산 마실하듯 나선 주제에 덥석 지리산 허리에 뚝 떨어진 친구와 나는 아직 깜깜한 산 앞에서 그저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는데, 사람들이 이마에 랜턴을 하나씩 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산을 오른다.     


“어떡하지? 우리도 가?”

“그럴까?”

“아니, 해 뜰 때 까지 기다릴까?”

“그럴까? 어디서?”     


둘러보니, 허름한 매점이 하나 보인다.

일단 들어가서 몸을 녹일 겸 따뜻한 커피를 하나씩 마시는데, 눈앞에 랜턴이 보였다.     


<3000원>

.....


“밖에서 사왔으면 1000원이었을거야.”

“몰랐잖아. 할 수 없지. 근데 1000원은 아니고 2000원쯤 했을 것 같다.”

“그래. 3배는 너무하지. 야, 근데 우리 꺼 왜 이렇게 작아? 빛도 약해.”

“.....밖에서 사왔어야 했나봐.”

“몰랐지.”     


그 때 우리가 몰랐던 것이 겨우 ‘랜턴값’이거나, ‘랜턴의 품질’뿐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호기롭게 그리고 대책 없이 시작한 산행은 우리 뒤를 따르던 이들에게 번번이 양보의 미덕을 발현하면서 점차 지리산에 대한 '깨달음'으로 변해갔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정상은 커녕, 작은 능선 하나도 제대로 넘지 못하는 형국이었고, 겨우겨우  올라가니 푸르등등 해가 떴고, (아마도)노고산 대피소가 나왔다.

그곳에서 밤을 지낸 것 같은 산악인(!)들은 산행준비에 여념이 없고, 뭣 모르는 우리는 대피소 매점에서 파는 땡땡 얼어붙은 초코바를 씹어 삼키면서 그 추위와 비현실적인 상황에 그저 멀뚱멀뚱할 뿐이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노고단 대피소에서는 컵라면조차 팔지 않음에 투덜거리며, 어느 국립공원에나 당연히 있었던 파전이나 동동주 따위를 파는 식당들도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없을 것이라는 것을.

더불어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의 배낭은 걷기 힘들다는 이유로 물 한병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대피소 언저리에서 추위에 떨면서 그래도 사진 몇 장을 찍고(일출은 우리 속도로는 감히 '언감생심'이었으니 이미 동튼 산자락이었을 것이다.), 무슨 돌로 쌓은 제단-그게 노고단인가?- 을 기웃거리다가 안내판 앞에 섰다.     

그리고 결단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고민 할 여지 없이, 이견없이 찾아왔다.


“자, 우리 이제 내려가자.”

“그래.”    


보아하니 지리산은 정상을 밟는 산이 아니라 그 능선을 따라 주욱 종주를 하는 산인 모양이었다.

동네 뒷산도 안 오르는 내가, 또 나와 비슷한 친구가 지리산을 종주할 리가 없었기에 그 능선에서부터 적당한 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많기도 많다. 이걸 어쩐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웅장한' 안내도 앞에서 갈 길을 몰라 멍때리기를 한참...

결국 유유자적 그 곁을 지나가던 등산객을 붙잡았다.


“저기요...”

“네?”

“저희가 내려가려고 하는데요. 여기가 어딘지를...그리고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아저씨는 스윽 지도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현 위치를 딱 짚고. 이쪽 길로 내려가면 제일 쉬울 거라면서 길을 알려줬다.     


“감사합니다! 근데 얼마나 걸려요?”

“한 두 시간? (우리 꼴을 보고)아니 세 시간?”     


아저씨는 유유히 사라졌다.     


“저 아저씨 걸음으로 두 시간이면 우리는 한 4시간쯤 걸릴 거야. 내려가서 아점먹자. 무슨 매점에서 컵라면도 안 팔아?”


그때가 아침 7시 반 언저리였다.





지리산 아래 삼겹살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였다.

꼬박 걸었고, 걸었고, 걸었는데 대략 10시간쯤 걸렸다.     

중간에 겨우 컵라면을 파는 매점을 만나, 컵라면을 하나 먹었으며 생수를 사서 마셨다. 얼어붙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내가 이게 무슨 짓인가'를 여섯 번 쯤 되뇌었고, 전국의 모든 뾰족한 돌덩어리는 지리산 길에 가 가져다가 꽂아놓은 것이 분명하다며 (심한욕, 더 심한욕)을 하면서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비틀비틀 내려왔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다크서클은 한껏 내려와서 무릎을 치고 줄넘기를 할 판이었고, 영혼은 반쯤 지리산에 묻어두고 왔다. '힘드러....힘드러....죽께서..죽께서.'를 술 취한 애들처럼 연발하는 우리를 본 식당 주인이 어디로 내려왔냐고 물었다.

우리가 내려 온 코스를 말했더니, 식당 주인은 깔깔 웃으면서 그 코스는 ‘쓰레빠’ 신고 마실 가는 길이라고 했다.

뭐, 내려오면서 보니 그 길을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함께 웃을 수는 없었다.

깔깔 웃는 얼굴이 미치도록 얄미웠다.

마음 속으로 욕만 대차게 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후에 산을 즐겨 찾는 선배에게 무용담처럼 지리산 썰을 풀었다가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남들 마실 가는 길에서 뭐 한다꼬 기면서 내려오고 지랄인데?"


(..산악인들이란. )





다음 날, 기차 안에서 친구와 나는 너무 아쉽다며 다음에 다시 오자고 했지만, 그 후 다시 지리산을 찾을 일은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지 싶다.

그때 새로 샀던 등산화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착화였다.

마음 한 구석 미련이 영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다시 갈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운동, 특히나 수직운동을 매우 싫어하고, 체력이 0 에 수렴하므로.   


아 참, 그 때 나는 그 코스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나불거렸다. 평생 기억할거라고 조잘거렸다.

어떻게 잊겠는가? 그 개고생을 했는데...

그런데 지금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말끔하게.

평생 안 잊어버릴 것 같던 누군가의 전화번호처럼.

단지 그때 즈음 어딘가에 이런 글을 썼던 것은 기억한다.    


<사는 것, 올라가는 길만큼 혹은 그 보다 더, 내려오는 길이 지랄 맞고 힘들 수도 있다. >


.


.


.


문장을 수정해야겠다.


<제대로 준비해서 오르지 않았으니, 올라가는 길도 내려가는 길도 그저 지랄 맞고 힘들 수 밖에.>





*묻어 둔 서랍안의 글을 일부 수정해서 다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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