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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Oct 12. 2019

그 남자와 이사도라.

이사도라, 학교 안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철 갈색 체크무늬 자켓을 입고 돌아다니던 그는 대학 캠퍼스 안을 24시간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노숙자라고 하기에는 깨끗했고, 집이 있는 사람치고는 지저분했다. 또한 말이나 태도에서 지적장애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으나, 평범하지도 않았다.  


그의 본명은 물론, 나이, 사는 곳 등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우리학교 학생이었다, 옆 동네에 산다, 어느 날 갑자기 출몰했는데 학교 어딘가에 숨어 산다는 둥,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확인 된 바는 아무것도 없었다.

선배의 선배까지 올라가는 증언을 토대로 오래전부터 그러고 다녔다는 ‘전설’ 만 전해질 뿐이었다.

(내가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학교를 맴돌던 그가 전국방송까지 탔지만, 역시 제대로 밝혀진 바는 없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잔디밭 한 가운데 누워서 낮잠 자기, 여기저기 학과 행사에 슬그머니 끼어들기, 수틀리면 욕하면서 시비 걸기, 여학생들에게 성희롱 일삼기, 주변 술집에 출몰해서 ‘삥’ 뜯기, 안면 익힌 학생들 쫒아 다니면서 구걸하기 등이었으니, 확실히 <이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문제인물이었다.


간혹 그를 측은하게 여겨 사소한 호의를 건네는 이도 있었지만, 이사도라가 돌려준 것은 베푸는 자의 으쓱한(?) 기대를 박살내는 더더욱 뻔뻔한 요구과 과도한 친한척과 반말이었기에 그에 대한 측은함은 오래가지 않았고, 측은함 위에 ‘감히’까지 보태져 더더욱 매몰찬 냉대로 돌아서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지독하게 불편하게 했고, 사람들은 그를 마음껏 싫어했다.

그가 욕을 하면 더 크게 욕을 하고, 그가 히죽거리면서 가까이 다가오면 노골적인 경멸을 감추지 않은 채 그를 피했다.


그리고 어느 날은 꽤 심각하게 두드려 맞기도 했다.

소문에 의하면 체육교육과 남학생의 여자친구에게 찝적(?)대다가 제대로 걸려서 제대로 맞았다고 한다.

그것이 헛소문이 아님을 증명하듯 한 동안 안 보이던 이사도라는 앞니 두개가 빠진 채 돌아왔다.

그리고 앞니가 없는 벌건 잇몸을 드러낸 채 히죽거리며 변함없이 교정을 누볐다.




자발적 백수이자, 가끔 이런저런 밥벌이를 하는 나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낸다. 도서관은 쾌적하고 조용하며,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고, 책이 가득 들어 찬 공간이 만들어 준 어딘가 고상해 보인다는 틀에 박힌 심리적 안정까지 보태져서 노트북 끼고 앉아 죄책감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 보내기에 완벽한 공간이다.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소도시의 시립도서관 안을 채우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수험생이고, 대여섯 권씩 쌓아놓은 책을 하루 종일 읽다가 집에 돌아갈 시간 즈음에 마지막으로 신문을 훑어 보는 노인이나 넓은 책상에 스케치북을 펼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처럼 노트북을 끼고 앉아 글을 쓰는 이들도 몇몇 있다. 거의 매일 출근하듯 도서관을 찾다보니 자주 보는 이들이 눈에 익었지만, 얼굴을 안다 해도 서로 모르는 사람이니, 그저 내내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이들에게는 가끔 주책맞게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저기, 무슨 글 쓰세요? 잘 써져요?” 라고.


물론,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낯익은 얼굴 중에는 그 남자가 있다.

그 남자가 내 시야에 등장한 건 대충 몇 달 전이다. 휴게실에서 잠시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휴게실 창문 너머로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보통은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눈이 마주치면 무심히 시선을 피할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빤히, 정말 빤히, 그리고 ‘화가 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눈빛에 당황해서 얼른 시선을 돌렸었다. 그리고 이후로 그는 계속 내 눈에 띄었다. 내가 본 그의 행동은 예사롭지 않았다. 로비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불쑥 욕을 내뱉기도 하고, 누구든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을 노려본다. 민망하리만큼 다리를 쩌억 벌리고 앉아 정신없이 다리를 떨거나, 직원에게 끝없는 질문을 쏟아내고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되네.’를 무한 반복한다. 


내가 그의 존재를 몰랐을 뿐 전부터 그는 그곳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내 눈에 박힌 이후로 그는 내게 불편하고 마주하기 싫은 존재로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하지만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을 때, 화장실을 가려고 로비를 지나갈 때, 계단을 오르내릴 때, 심지어는 도서관을 오가는 길위에서도 그를 마주친다. 운전 중 우연히 고개를 돌린 시선 끝으로 한껏 욕을 하면서 팔을 휘젓고 걸어가는 그가 닿았다. 불편하다. 그 사람은 알길 없는 나 혼자만의 일방적 불편함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슬그머니 외면하는 것뿐이다. 


어느 날, 그 남자를 보면서 문득 이사도라가 떠올랐다.

학교 안을 누비던 이사도라와 도서관을 맴도는 이 남자.

같은 공기로 숨을 나누고 있지만, 껄끄럽고 불편한, 아는 사람이고 싶지 않은 사람.  

기괴한 몸짓으로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남자를 최대한 멀리 스쳐 지나가면서, 앞니 두개가 빠진 채 히죽거리며 걸어오던 이사도라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나는 오만하게도 그 남자와 이사도라의 제법 괜찮았던 시절을 제멋대로 상상한다.

그들에게도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을텐데 어느 시절에 저 골짜기로 접어들었을까?

다시 한 번 분명히 오만이다. 그리고 두려움이다.

누구 하나 환영하지 않음에도 떠나지 못하고 앞니가 빠진 채로 교정을 맴돌던 이사도라를 떠올리는, 그 남자의 기괴한 몸짓 하나 하나를 모두 다 목도한 나의 시간들이 두려워졌다.




이정도면 참을만하다, 괜찮아졌나보다 싶다가도 불쑥 많이 아픈 날이 있다.

통증을 꾹꾹 누르며 도서관 책상에 앉아서 내가 지금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버티는 날, 묵직하게 뻗치는 통증에 한껏 찌푸려진 눈을 들어 허공을 보다가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불에 덴 듯 얼른 시선을 거뒀다. 


불쑥 무섭도록 아픈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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