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N, 33세
예고 없이 들려오는 어떤 음악에 내 마음이 쾅 내려앉을 때가 있다.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 못해 시공간을 뒤바꿔 놓기까지 한다. 2016년 11월에 발매된 The Weeknd의 “I feel it coming”이라는 곡을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다. 순간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서 그해 여름, 대구의 온도, 바람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2017년 벚꽃이 만발하던 봄에 그와 처음 만났다. 낮에는 따듯하고, 밤엔 약간 쌀쌀하던 4월의 온도는 연애를 시작하기 참 좋은 시간이었다. 2016년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우왕좌왕하던 나는 2017년 새해가 되자마자 점을 보러 갔었다. 할아버지 신이 내리신 보살님은 담배를 쩍쩍 피우시며 나에게 곧 이동수가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곳에서 일이고, 사랑이고 다 잘될 거라고 했었다. 그 예측은 놀랍게도 맞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공모에 당선되어 운 좋게 대구로 1년 동안 작업을 하러 가게 되었다.
‘이동수는 맞혔고.. 여기에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난단 말이지.. 오호라…’
대구에서의 생활은 3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쯤 만난 그 남자가 혹시 나의 사랑하는 그이가 될까 조금 기대하게 되었다. 처음 그를 만난 날, 비 온 후의 젖은 땅 냄새가 코를 찌르는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다. 대구의 지리를 잘 모르는 나에게 지하철역 앞까지 나오라고 했고, 나는 그의 차를 기다렸다.
흰색 벤츠 e 클래스가 내 앞에 섰다.
‘드디어 내 인생에서도 똥차가 가고 벤츠가 오는 것인가…’ 라고 쾌거를 부르며 올라탄 차 안의 남자는 만세를 불러도 될 만한 선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와 함께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며 4월과 5월, 대구 곳곳을 누비며 데이트를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만나면서 맛집과 멋집을 다녔다. 주로 차를 이용해서 다녔으므로 차에서 나눈 대화들과 음악들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적당히 따듯한 봄밤에 함께 축구 중계를 보며, 나는 칵테일을, 그는 (운전을 해야 했기에) 맥주 몇 모금을 마셨다. 아름다운 봄의 온도와 칵테일의 힘을 빌려 나는 그의 마음을 묻고 싶었다. 한 달 이상 데이트를 하면서, 이제 만나보자 혹은 정식으로 사귀어 보자와 같은 형태의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 서운하던 타이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침 차에선 아주 끈적하기 따로 없는 The Weeknd의 ‘I feel it coming’이 신명 나게 나오고 있었다. 내가 머물던 숙소에 데려다주던 차 안이었다. 알코올의 힘과 봄밤에 불던 바람의 감각에 의지하여 나는 그에게 고백 같은 질문을 했다.
“난 네가 좋은데, 넌 어때? 한 달 정도 만나봤고, 이제 계속 만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니야?”
답이 정해진 듯한 돌직구식 고백과 질문이 부담스러웠던 세 살 연하의 그는 대답을 얼버무렸고, 애매한 웃음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그 후로 한두 번 건조하게 만나고 우리 사이는 애매하게 끝이 나버렸다. 마치 음식 취향이 맞는 그저 맛집 동호회 회원인데 이성 관계로 발전하려다 망한 케이스이랄까.
나의 2017년 봄은 그렇게 설렘으로 채워지고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래서 대프리카*의 여름이 더욱더 힘들었다. 느낌이 온다(I feel it coming)고 그렇게 외치던 그 끈적한 노래를 틀어 놓고선 그는 그렇게 느낌 없이 떠나가 버렸다. 이 노래를 들으면 설렜던 기분과 실망했던 마음이 뒤엉킨 그해 여름, 대구의 온도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이 노래를 들은 지금, 그는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해진다. 그래도 하나 얻은 것은 그 덕분에 그 누구보다 느낌 오는 대구의 맛집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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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아프리카의 합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