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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May 25. 2022

남은 기억의 조각들로

 우리는 모두 어쩌면 누군가와의 기억으로 살아가고, 견뎌내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오감 중, 특정 감각이 자극적으로 인식될 때,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누군가 숨이 막힐 정도로 꽉 안아줄 때면, 아랫니로 윗입술을 꽉 깨물며 뜨겁게 안아 주시던 나의 외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2015년 3월,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만나면 귀여운 갓난아기를 만나 안아주듯 몸으로 인사하던 노인이었다. 나의 가슴이 눌려 아파질 때까지 꽉 안아주던, 그 숨 막히는 촉감을 경험할 때면 할아버지의 숨이 기억난다. 


 흰 머리카락 하나 없는, 유난히 딱 붙은 검은색 곱슬머리의 키 큰 중년. 금색의 얇고 네모난 안경을 쓰고 사람 좋은 웃음을 허허 들려주시던 사람. 


 외할머니 유전자를 닮아 외삼촌은 흰머리가 나지 않으셨다. 머리카락만 보면 그의 여동생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신 외삼촌은 오랜만에 만나도 마음에도 없는 괜한 인사말 대신, 필요한 말만 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 말엔 사람 좋은 웃음과 미소가 있었다.  


 지난 토요일 저녁, 그 웃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얼마 전, 사고로 팔과 다리에 3도 화상을 심하게 입으시고 중환자실에서 버티시다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만약 검은색 곱슬머리의 키 큰 중년이 허허 웃는 모습을 본다면 당연하게도 외삼촌이 떠오를 것이다. 


 나의 기억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막내 이모는 내가 세상에 태어난 지 1년이 되던 해,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 그녀 나이 20대 초반이었다. 그녀에 대한 감각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떤 자극으로도 그녀는 나에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외할머니에게 그녀의 막내딸, 남편, 장남은 수많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태어났던 순간부터, 만나고 결혼하던 순간, 세상을 떠나기 전 순간들까지. 내가 만든 가족과의 기억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에게, 자식을 먼저 둘이나 보낸 기구한 할머니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외삼촌의 장례식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그 무엇보다 할머니의 힘든 모습을 보는 것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팔다리를 모두 자른 채 힘들게 살아갈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보단, 이렇게 떠나 보내주는 것이 낫다고 체념하신 듯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할머니에겐 외삼촌의 안타까운 기억들이 많을 텐데, 그런 모습까지 각인된다면 사무치게 가슴 아플 일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견뎌 내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각자의 방법들로 이겨낼 테다. 난 주로 행복했던 감각의 순간을 끄집어내 위로 받는다. 그 기억들엔 당연히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의 기억들로 살아낼 힘을 얻는다.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이 남겨준 기억의 조각들로 웃고, 울며 따듯해지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 기억의 조각들이 사라진다면, 나의 삶은 건조해지고 무의미해질지도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소중한 기억들을 잘 싸매서 보관해 두고 싶다. 


 외삼촌. 가끔 제가 위로 받고 싶은 날엔 누군가의 얼굴로, 불현듯 허허 웃으며 나타나 주세요. 그곳에선 할아버지와 함께 아픔 없이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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