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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May 18. 2022

모르는게 약

코로나 시대의 소개팅 

 여자는 3월의 뜨거운 평일 낮, 가족과 함께 간 피크닉에서 뜻밖의 전화를 받는다. 삼겹살을 굽고 있다가 휴대폰에 뜬 이름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는 3년 전 지방에서 우연히 알게 된 선배 친구의 이름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미성 누나랑 같이 지방에 일하러 왔는데, 여기 사는 친한 후배 중에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저희가 이번 주 주말까지 여기 있을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시면 겸사겸사 놀러 오실래요? 미성 누나랑 같이 주무시면 되니까, 그냥 편하게 오시면 돼요. 오랜만에 한잔합시다.” 

 “마침 금요일에 제가 그 근처에 일이 있어서 가는데, 그럼 목요일 저녁에 갈게요.” 


 여자는 오랜만의 연락이었지만 당황하지 않고, 그녀답게 갑작스러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다. 목요일 오후, 여자는 서울에서 기차를 탄다. 도착 시간은 저녁 7시 10분. 주선자가 아닌, 소개받을 남자가 직접 기차역까지 여자를 데리러 나왔다. 그녀는 잠시 당황했지만 새빨간 그의 차에 올라타며, ‘이 남자 보통 취향은 아니겠다.’라는 짐작을 한다. 


 시내로 가는 차 안,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웃고 있는 이 남자의 하관을 상상하며, 여자는 창문을 살짝 내리고 오랜만에 온 이 도시의 밤공기를 맡는다. 


 둘은 저녁을 먹으러 가고 있다. 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아직 사는 이 남자는 타 도시 여자와의 데이트가 오랜만인지, 로컬의 부담을 느끼는 눈치다. 8시 넘어 시내에 도착하니 식사가 가능한 곳들은 대부분 한 시간 남았다. 어쩔 수 없이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술집을 위장한 닭갈비집으로 향한다. 


 여자는 상상했던 남자의 하관을 확인한다. 상상과 유사하다. 아니, 오히려 훌륭하다. 입술을 오므리며 웃는 행동을 보고 여자는 짐작한다. 이 남자의 치아가 고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그의 치아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입술로 돌리는 것이 쑥스럽다. 그녀는 치아가 고른 남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 소개팅을 할 때, 차보다 식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식사매너 뿐 아니라 치아를 확인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컬 막걸리와 닭갈비 2인분을 시킨다. 떡과 야채가 익어가자 남자는 여자에게 그것들을 덜어 그릇을 건넨다. 여자의 그릇이 비워지기가 무섭게 잘 익은 닭과 고구마를 덜어 준다. 시간차로 익어가는 닭갈비의 내용물을 순차적으로 담아주는 남자의 행동에 여자는 새빨간 차를 모는 남자답다는 생각을 하며 센스에 감탄한다.  


 막걸리 두 병을 다 비운 후에야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미성과 그녀의 친구는 호텔 앞 편의점 테이블에서 여자와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밤의 공기를 마시며, 남자는 용기 내 여자의 사진을 찍어준다. 벚꽃처럼 아름다운 시간이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다. 


 남자는 여자가 묵을 미성의 호텔 방에 데려다주고, 어색하지만 따듯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미성의 방에 들어 오자, 미성은 여자에게 묻는다. 


 “어때?”

 “선배 고마워요. 너무 괜찮은데요? 그 사람의 마음과 의지에 달렸지만 일단 전 완전 마음에 들어요.”


 그 이후 여자와 남자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핑계 삼아 다양한 도시에서, 각 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여러 번 만나 데이트했다. 봄에는 벚꽃과,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 가을에는 풀벌레 소리와 함께했다.


 그렇게 세 종류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여자는 남자의 고백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고, 서운했던 그녀는 술기운을 핑계로 고백에 가까운 초대를 했다. 새해 일출을 바다 앞에서 함께 보자는 제안이었다. 다시는 친구로도 못 지낼 만큼 그는 정중히 거절했고, 여자는 그 이후로 그를 지우기로 했다. 


 첫 만남에서 굳이 서로의 SNS를 묻고 팔로우한 탓에,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남자의 소식을 간접적으로 듣고 보게 되는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딱 그와 함께한 시간만큼이었다. 견딜만할 때쯤 자꾸만 알게 되는 그의 근황 때문에 간신히 희미해져 가는 남자와의 아름다운 시간이 수면 위로 떠 올라, 자꾸만 원점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무엇 하나 꽂히는 게 있으면 그 남자에게처럼 아주 쉽게 사랑에 빠질 자신이 있는 여자는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선 그의 소식을 모르는 것이 치료제라 생각하며 카카오톡 메신져에서 그를 숨겨버리고, SNS도 언팔로우했다. 여자는 그의 소식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약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새빨간 차와 같이 확실한 취향을 가진 새로운 남자가 나타날 때까지 이 치료제를 계속 복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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