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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un 11. 2022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6월의 두 번째 월요일이 남자의 생일이다. 생일이 있는 전 주 금요일에 그는 여자의 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그녀는 그를 위한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준비하려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여자는 부끄럽게도 본인이 먹을 미역국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미역국은 처음으로 끓여본다. 조금 더 맛있는 미역국을 위해 여자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레시피를 따라 재료를 사고, 메인 요리로 갈빗살도 준비한다. 얼마 전 작은 화로를 산 이유도 남자의 생일 때문이었다. 그 화로에 갈빗살을 구우며, 와인과 미역국을 대접할 생각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닥친 직후에 만난 남녀는 데이트를 주로 서로의 집에서 하고 있다. 외식하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던 패턴을 뒤로 하고, 여자는 작은 선물과 함께 생일상을 차려 놓고 그를 기다린다. 남자는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여자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의 집에 들어선다. 테이블 위에는 여자가 터키에서 사 온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놓여 있고, 그 옆엔 잘 차려진 2인분의 밥상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는 앞치마를 두른 채, 남자를 맞이한다. 고작 3개월이 조금 넘은 커플이지만, 제법 신혼부부 같은 기분이 들어 서로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남자는 엄마 외의 이성에게 생일날 미역국을 얻어먹은 게 처음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소극적으로 건넨 이 말에 여자는 되려 감동한 눈치다. 그날 밤, 남녀는 서로의 몸에 대한 탐욕을 주저 없이 드러내고, 몸 구석구석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며 외로움에서 해방한다. 


 2주 후인 6월의 마지막 주 주말에 남녀는 출장을 빌미로 부산에서 2박 3일 데이트를 한다. 환경이 새로워지니 그들의 감정 또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설레고 애틋하다. 부산 여행이 처음이라는 남자를 데리고, 여자는 부산 곳곳을 소개해주고 걷고, 달린다. 보통의 30대 커플과 다르게 그들은 자동차가 아닌 공유 킥보드로 부산의 곳곳을 여행하고 있다. 그런 여자가 남자는 고맙고, 예쁘다. 한여름이 닥치기 전, 6월 끝자락의 부산 햇빛과 바람, 습기는 서로가 느끼는 애정의 크기만큼 완벽했다.  


 몇 달 후, 금요일. 남녀는 오랜만에 심야 영화를 본다. 박사 학위가 있어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 하필 심야에 이런 영화를 봐서 그와 그녀는 더욱이 피곤하다. 각자의 해석이 난무한 가운데, 새벽 1시를 훌쩍 넘긴 도로엔 고요함이 가득 차 있다. 차의 창문을 내리고 제법 시원해진 바람을 가로지르며 여자의 집으로 들어선다. 


 여느 떄와 달리 이날 새벽에는 테넷 때문인지 사랑보다는 잠을 택한 남녀. 건조한 공기 속에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유난히 화창한 토요일 낮. 느지막이 일어난 남녀는 숲이 어우러진 브런치 카페에 간다. 어제 본 영화의 진지한 기운이 왠지 남녀에게 전달된 걸까. 서로의 얼굴이 아니라, 긴 시간 남녀는 숲만 가만히 바라본다. 긴 시간 침묵을 깨고, 어렵게 남자가 건넨 말에 여자는 흠칫 놀란다. 최근 소원해진 그의 마음에 대해 말한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싶었던 여자는 언젠가 만날 말이었어도 속상해 눈물을 흘린다. 자기 자신 내부의 결핍 떄문이라고 비겁하게 변명하는 그의 말 뒤로 그녀는 할 말이 없다. 


 여자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애석하게도 햇빛은 반짝이고 바람은 간지럽다. 도망치고 싶은 침묵을 견디며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짧은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뜨거웠던 6월의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그녀는 또다시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그해 6월의 애정 어린 공기를 조금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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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잔나비의 2016년 앨범, 『MONKEY HOTEL』삽입곡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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