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영화,『패터슨』
한 사람의 평범한 일주일을 ‘시’와 함께 다룬 영화가 있다. 『패터슨』(2017)은 시 쓰기를 좋아하는 미국 뉴저지주의 작은 도시 패터슨시의 한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다. 패터슨시의 패터슨씨라니. ‘시’에 대한 이야기를 논하기에 이미 운율이 미쳤다. 영화는 월요일부터 시작해 그 다음 주 월요일까지, 꼬박 패터슨의 일주일을 보여준다. 어떤 이는 이토록 지루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영화로까지 만들다니 제작자와 투자자의 돈이 아깝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나, 창작의 의지를 불태워야 할 때면 이 영화를 꺼내 보곤 한다.
패터슨은 기본적으로 반복, 순환적인 삶을 지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버스 운전기사라는 직업과 더불어 일상의 행동 습관에서도 지루하리 만큼 반복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한다. 영화에서는 비교적 토요일이 소란스럽게 그려지고 있는데, 패터슨 부부가 외출 후 돌아온 집에 반려견이 패터슨의 시 노트를 맹렬하게 갈겨 놓은 사건이다. 그의 일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위로 받는 존재를 한 순간에 모두 상실하지만 패터슨은 화를 내기보단 침묵하고 고요히 좌절한다.
이 상실감을 너무도 평범한 루틴 속에선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은지, 약간의 일탈로 혼자 산책길에 나선다. 거대한 폭포 앞에 앉아 멍때리고 있는 패터슨에게 어떤 시 쓰는 일본인이 다가오며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빈 노트를 건넨다. 패터슨은 굳이 사양하지 않는다. 그 노트엔 또 다시 그의 반복과 순환 속에서 빛나는 시들로 채워질 것을 예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텅 빈 페이지, 화면, 화폭을 꾸준히 채우는 용기가 있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며 나와 내 주변, 일상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 간혹 멀리 있는 주제로부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면 반성하듯 떠오르는 영화가 바로 『패터슨』이다. 근래에 나는 다소 억지스러운 작업의 정직하지 못한 기획서를 쓰며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패터슨의 시가 대단한 소재에서 온 게 아니듯, 예술 작품이란 나의 일상에 있거늘.
조만간 패터슨의 일주일을 감상하며 내 일주일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혹시 모르지. 그 속에서 텅 빈 페이지를 가득 채울 거대한 가능성을 만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