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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Feb 14. 2024

재능VS 성실함

 뛰어난 재능과 지독한 성실함이 겨룬다면 과연 누가 이길까? 재능과 성실함을 고루 갖춘 인간이라면 아마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성공하기 쉬울지도 모르지만, 만약에 둘 중 한 가지만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택하겠는가?


 이런 생각과 질문을 가지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국가유공자의 딸이었던 성실한 혜신과,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게을렀던 아은이와 나는 같은 반이었다. 그들처럼 나는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성실함도 지독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성실함의 부등호가 더 컸던, 대학의 ‘학업’보다는 대학‘생활’의 낭만 때문에 열심히 등학교를 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어떻게 해야 학점이 잘 나오는지 모두가 잘 몰랐다. 고등학교 때처럼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 잘해 오고 시험을 잘 치면 점수가 잘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땐 이미 2학기가 되어있었다. 주관적인 취향과 기준이 반영되는 ‘예술’ 대학에서는 그야말로 평가가 난해했고, 숙제의 완결과 좋은 시험 성적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는 경우는 대부분 교양과목이었다. 


 국가유공자의 딸이었던 혜신이는 등록금을 내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도 그녀는 날마다 가장 먼저 실기실에 들어오는 학생이었다. 또한, 교수님이 정해주신 데드라인에 훨씬 앞서서 과제물(창작물)을 제출하기 일쑤였고, 이에 같은 반 친구들은 은근히 그녀의 지독한 성실함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혜신이는 등록금도 안 내는데 굳이 장학금을 받으려고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그러니까. 나라면 그냥 대충 다닐 텐데. 대단하긴 하다. 근데 쟤 작품 좋냐?”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난 별로.”

“나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혜신이의 성실함은 정평이 나 있었지만, 작업물을 보면 예중-예고를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반면, 학교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중간, 기말 평가 일주일 전쯤 겨우 학교에 나와 이틀 정도 대충 작업해서 내놓은 작품으로 크리틱에 참여했던 아은이의 작업물은 감히 대학생의 작품이라 하기 얼떨떨할 정도였다. 


“미친, 아은 언니 작업 봤어?”

“어. 아니 이틀 동안 대충 그린 거 같은데 작품 개 좋아. 짱나게.”

“내 말이. 내가 교수라도 점수를 안 줄 수 없을 거 같아. 억울하지만 인정한다 진짜.” 


 혜신이와 아은이는 (교양과목을 제외한) 함께 들었던 미술 실기 과목에서는 거의 같은 점수를 받기 일쑤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혜신이는 A+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어차피 장학금은 그녀의 몫이었는데도, 그 결과가 용납이 안 됐던 모양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약 20년이 지난 현재, 성실함의 대명사 혜신이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 아은이 중 누가 성공한 예술가가 되었을까? 본인의 삶을 지독히 성실하게 살았던 혜신이는 20대 후반에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로 정박하여 어느 경제활동도, 창작활동도 없이 살고 있고, 재능은 뛰어났지만 게을렀던 아은이는 경제활동을 위해 입사한 키치한 의류 브랜드에서 거의 15년째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도맡아 하기 싫은 일을 겨우겨우 해내며 산다. 어쩌면 사회인이 된 아은이는 강제적 성실함을 탑재하고 겨우 남은 재능으로 돈을 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두 명의 현재로 재능과 성실함의 대결을 논할 수는 없지만, 결국 재능과 성실함 한 가지만으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을 갖기엔 어렵다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성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글의 도입부에 했던 질문을 누군가가 나에게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신이시여, 저에겐 재능도, 성실함도 아닌 거대한 ‘운’을 주십시오!” 



*글을 쓴 본인의 대학 전공은 미술대학 회화과(서양화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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