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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Mar 04. 2024

여행에서 남은 것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가로지르며 도착한 작은 섬 앞에 보트를 정박했다. 보트 앞 바다의 잔물결 속으로 구명조끼와 물안경을 쓰고 입수했다. 처음 겪어본 깊은 바닷속엔 아름다운 색의 열대어와 불가사리, 산호초가 가득했다. 그 사이를 떠다니던 해파리와도 같은 정체불명의 투명한 물체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바닷속을 너저분하게 떠다니던 투명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이었다. 


 좀 전에 배 위에서 먹은 각종 해산물이 바닷속에서 떠다니던 플라스틱과 교차하여 그려졌다. 갑자기 소화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플라스틱을 머금은 수생동물을 먹고, 그 생물들이 사는 곳을 보겠다고 온 가파른 욕망을 가진 한 인간이었다. 설 연휴를 맞아 가족 여행으로 온 필리핀의 한 해안가에서 스노클링과 각종 체험을 하기 위해 난 인생 처음으로 깊은 바다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장도 함께 목도하였다. 


 모든 움직임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믿는 나에게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은 비단 전문가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을 고민해 왔고, 나름대로 실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덜 사고, 덜 먹고, 덜 쓰고. 하지만 당연히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 혼자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닐뿐더러, 생각보다 이 ’연결‘의 힘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지구의 인간뿐 아니라 많은 동식물이 행복했으면 한다. 여행에서 마주한 플라스틱 부유물로 인해 나의 전세계적 평화주의 오지랖이 발산되면서 조카들에게 해양 생태계가 우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설과 함께 투어는 마무리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엔 부끄러워진 나를 일깨워준 얼마 전 읽은 이 글귀가 떠올랐다. 


“자연은 푼돈까지 일일이 세고, 칼같이 시간을 따지며, 가장 미미한 사치까지 꾸짖는 회계사다.”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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