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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Aug 31. 2020

구독하고 싶은 교육

복지적 교육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 

 “구독 꾸욱, 좋아요 꾸욱~”


 언제부터 우린 이렇게 구독에 익숙한 사회에 살게 되었을까? 어릴 적, 새벽마다 집에 도착하던 우유, 신문 돌리는 발걸음 소리에 대략 몇 시인지 알던 시절이 있었다. (라떼는 말이야) 입맛과 취향에 맞는 우유와 신문을 구독하기까지는 몇 번의 구독과 해지를 반복해야 했다. 내 몸에 잘 맞고 어울리는 옷을 사기 위해 여러 벌의 옷을 입고 벗는 번거로움과 같은,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구독하던 과거가 있었다. 


 약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손가락 까딱 정도의 수고를 거치면, 정치면부터 스포츠면까지 손쉽게 카테고리별로 구독과 해지가 가능하다. 게다가 인공 지능이라는 인간도 아닌 녀석이 나의 취향을 분석해주어 구독 추천까지 해준다. 무섭도록 정확한 분석에 가끔 놀랄 때도 있다. 그리고 함께 구독하는 사람들과 쉽게 의견을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어떤 것을 구독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은, 지속해서 그것을 보고, 읽고 싶다는 것을 뜻한다. 계속 보고 싶고, 알아 가고 싶은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성인이 될 무렵, 내가 구독하고 싶던 한 사람이 있었다. 꾸준히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주입식 교육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어쩌면 처음 ‘대화의 교육’을 알려주신 선생님이었다. 고3 시절, 선생님과의 대화로 나는 해방감을 느꼈고, 그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언제 해지된 지도 모를 정도로 가물가물해진 기억 속의 인물이지만,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고 싶었던 나의 첫 스승님이었다.

 

 ‘대화의 교육’을 정점으로 경험한 것은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서 접한 미국의 교육이었다. 대화는 물론이거니와, 가끔은 서로의 생각을 주장하며 토론과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질문과 대답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또 다른 여러 개의 질문을 남긴 채 수업이 종료되기도 했다.    


 대화는 두 명 이상일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고, 대화가 없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도, 그 사회에 사는 각각의 개인도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브라질 출신 교육 사상가 파울로 프레이리 (Paulo Freire)의 저서 『페다고지』에서 그는,‘대화의 교육학’에 대해 말했다. 


“의사소통을 차단하는 것은 곧 인간을 물건 상태로 전락시키는 것이며, 의사소통을 위한 변혁은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화가 박탈된 개인은 억압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프로 n잡러인 나의 주캐(주 캐릭터)같은 부캐(부 캐릭터)는 교육자이다. 교육자로서 나의 목표는, 내가 처음 구독 관계를 유지하고 싶던 스승님의 가르침과, 미국에서 경험했던 수업과 같은 ‘대화의 교육’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의 학생이 예술가이기 이전에 ‘대화’를 끌어 낼 줄 아는 주체적 인간이 되는 것을 도와주는 싶었다. 교육자로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동안 만큼은 잊지 않고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가 이런 목표를 갖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조카 예준이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이다. 아주 어릴 적, 주입식 교육을 하는 유치원에 다니던 예준이는, 끔찍이도 숙제를 하기 싫어했다. 프레이리가 말한 것처럼, 아마 그곳에서 예준이는 ‘대화가 박탈된 개인의 상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토론식 수업과 놀이를 통한 창의적 교육을 하는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 이후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대화’를 만들어 낼 줄 알게 되었다. 약 30년 차이가 나는 남자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그와 나는 가끔 서로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꿈꾼다면, 우리 모두가 사는 세상이 꽤 괜찮은 삶이지 않을까? 물론, 최근에는 다양 한 형태의 학교가 생겨, 내가 받았던 주입식 교육을 받지 않는 기관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학생은 여전히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고, 현실과 타협하기 바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어떻게 바로잡을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듯, 구독하고 싶은 교육/교육자/교육기관이 많이 생겨나면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교육이 미래라는 말을 믿는 편이다. 사회적 동물로서, 많은 학생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하며 성찰하고 깨닫기를 희망한다. 구독과 좋아요를 마구 누르고 싶은 다양한 교육 현장들이 생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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