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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Dec 29. 2020

감히 공감이라는 말은 쓰지 않기를

故 박지선씨를 추모하며.

 얼마 전, 실시간 검색어에 “박지선 유서”가 느닷없이 떠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나이지만, “유서”라는 단어의 무게감에 클릭할 수 밖에 없었다. 정확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많은 사람에 의해, 평소 그녀를 괴롭히던 피부 질환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성 기사들이 넘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박지선씨와 평소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던 그녀의 모친도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그녀, 그리고 그녀 모친의 죽음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박지선씨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평소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죽음은 마치 지인이 세상을 떠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며칠 동안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한참 생각해보았다.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그녀가 옆에 있다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 줄게요.”* 


 몇 해 전, 마음이 힘들어서 치료를 받고자, 미술 심리치료 수업을 들었고 끝내 자격증을 취득했다. 오랜 시간 동안 지도사로 활동하고 계시던 강사님께서 유달리 강조하던 부분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것은 심리지도사로 활동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내담자에게 “나는 너를 공감한다” 라는 말을 쓰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공감’이라는 단어를 자주 보고, 듣고, 쓰기도 한다. 너무나 익숙한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다. 내가 온전히 그 사람의 경험을 얼마나 이해하고 느낄 수 있을까?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경우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테지만, 말로만 듣고 공감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미술 심리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로 지금까지 꾸준히 청소년 대상으로 미술을 매개로 활동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나이가 나보다 어리고 경험이 적은 학생이라고 해서 그들의 경험을 내가 해봤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나이와 성별, 가족, 환경, 주변인 등이 모두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내가 그들과 만나며 ‘치료’라는 이름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뿐이다. (치료라는 말 또한 감히 쓰기 어렵다) 혹은 그것마저 어려운, 내가 듣기도 힘든, 곤란하고 깊은 상처가 있는 학생이라면 손을 잡아주거나 꼭 안아 줄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상처, 고민, 아픔을 상상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아무리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라도 해낼 수 없다. 100% 그와 같은 경험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지선씨의 죽음에 대해 엄마와 대화를 하던 중, 엄마는 “밝고 똑똑한 사람인 것 같았는데 죽긴 왜 죽었을까..” 라고 무심결에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어떻게, 왜 죽음을 택했는지, 그러기까지의 과정을 엄마가 모를 텐데 그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마.”라고 화를 내며 대답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 용기의 무게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울 것이다. 


 현장에서 박지선씨의 어머니가 썼다는 유서가 발견되었지만, 유가족은 공개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런데도, ‘단독보도’라는 달콤한 뱃지를 달아 조선일보는 그 유서를 일부 공개했다. 그걸 보도한 기자는 팀에서 칭찬을 받았을까? 타인의 죽음과 그 가족의 마음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그 기사를 쓸 수 있었을까? 직업정신이 투철한 기자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으로서 도덕성에 어긋난 행동을 한 건 아닐까. 


 그 어떤 사람의 죽음에도 가벼운 죽음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상처에, 죽음을 택한 이유에 공감한다는 말을 쉬-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위로의 방법을 택할 때, 공감이라는 단어는 어렵게 쓰려 노력할 것이다.   


故 박지선씨와 그녀의 어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 2016년 발매한 이하이의 『SEOULITE』 앨범 중, “한숨” 의 가사 일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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