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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Feb 21. 2021

Dear, X

헤어진 연인에게

 딱 1년 전 이맘때쯤 너를 만났지. 너를 만나러 처음 가던 길, 그날의 옷차림, 온도까지 기억이 나. 1년이 지난 지금도 왜 여전히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때 입었던 옷을 꺼내 입을 때마다 그때의 내가 생각나. 그때의 나를 지우면 너도 지울 수 있을까?


 두 번째 데이트하던 날의 바람과 나의 옷차림도 생생해. 봄이었지만 제법 바람이 불어 쌀쌀했던 그날, 기분 좋게 먹은 저녁과 반주로 조금 걷고 싶어서 우린 한강 변 산책을 했었지. 휘몰아치는 바람결에 서로의 몸이 움츠러들어서 어깨동무나 손을 잡고 싶어 했던 너의 우물쭈물한 행동도 기억해.


 그 두 번의 만남보다 강렬했던 이별의 날은 여전히 어제 일 같아. 가을을 알리던 찬란한 하늘과 내리쬐던 태양 아래 갑작스러운 이별을 결심한 우리. 너의 뒷모습을 보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서 먼저 나의 뒷모습을 너에게 보여주었지. 조금은 이기적이지만 나의 그 뒷모습을 넌 오래 간직하면 좋겠다.


 오늘은 너와 가자고 약속했던 위스키 바에 친구와 다녀왔어. 너와 그곳을 다녀갔다면 아마 쉽게 갈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워낙 애정하는 곳이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함께 가고 싶지 않았거든. 천천히 음미하며 위스키를 마시는 동안 잠깐잠깐 너 생각이 났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딱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너와의 순간들 때문에 가끔은 괴롭기도 해. 하지만 그때의 내가 예뻐서, 기억 속에 그냥 남겨두고 이렇게 순간순간 떠오를 때마다 네가 아닌 나를 기억하려 해.


 그때의 너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멋지고 예뻤을까? 만약 그랬다면, 내가 아니라 너를 기억하면 좋겠어. 어쨌든, 뜨겁게 존중하고 사랑했던 한 연인의 모습이었을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그때의 너도, 나도 희미해지겠지. 서로에게 누군가가 생기면 아마 더 그렇게 될 거야. 진부한 말이지만, 너에게 더 좋은 사람 만나. 나도 꼭 그럴게.


 언제나 그랬듯이 건강 잘 챙기고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길 바랄게.


                                                                                                  2021 이제 너에게 아무도 아닌, Eu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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