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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Mar 29. 2021

언제쯤 꽉 찬 통으로 돌려드릴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사랑’의 정의는 수없이 많지만, 나의 경우엔,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함께 먹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사랑인 것 같다.


 일상생활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거래를 하며 지낸다. 돈을 주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경조사에 친구가 와주었다면 응당 그 친구의 경조사엔 참석한다. 만 원짜리 선물을 받았다면 언젠가 그 사람에게 그 정도 가격에 해당하는 선물을 주기도 한다. 이렇듯, 지속가능한 관계를 위해서는 ‘거래’ 비슷한 행위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거래’가 무의미한 유일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바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90살 먹은 노인네가 60살 넘은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부모-자식 관계. 물론, 2021년의 이 관계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표현은 부모-자식 관계 이외에는 해당하는 경우가 없는 것 같다. 이 무식한 사랑법 때문에 가끔은 영화 『마더』(2009, 봉준호 감독 작품)나, 『공공의 적』(2002, 강우석 감독 작품)처럼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60대 부부의 36세 자식인 나는 그들의 사랑을 반찬통으로 느낀다. 10년 전 공부를 하러 간 뉴욕에 3년간 있을 때도, 한두 달에 한 번씩 엄마는 우체국 박스에 꽉꽉 채워 반찬을 가득 보내주었고, 차로 20분 거리에 사는 지금도 혼자 사는 36세 노처녀인 나를 위해 냉장고를 각종 밑반찬으로 채워준다. 이 반찬들을 다 먹은 후 빈 통을 달랑달랑 가져갈 땐 뭐라도 채워야 하나 잠시 고민하지만, 마땅히 채울 것이 없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거라곤 맛집에 모셔가거나 먹을 것을 사가는 정도의 일이다. 


 음식만큼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 또 있을까? 내가 엄마보다 요리를 잘한다면 그 다른 선물보다 음식을 해 드리고 싶다. 나에겐 바로 그게 사랑이자, 사랑의 표현이니까. 


 며칠 전, 부모님 댁에 오빠 부부, 나까지 모두 모여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새언니는 얼마 전 엄마에게서 받은 빈 반찬 통 여러 개를 내밀었다. 나와 같이 새언니도 빈 통을 내밀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반찬통을 드리면서 마땅히 채워드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을 테다. 


 꽉 찬 통을 주고, 빈 통을 돌려받는 엄마의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언제쯤이면 나는 정성 가득한 요리가 담긴 통을 엄마에게 건넬 수 있을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통은 비어 있어도 마음만은 꽉 채워 드릴 방법을 연구해봐야겠다. 그리고 조금은 서투르더라도 어떤 음식으로 채워진 통으로 돌려드려 보는 연습부터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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