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는 이제 내가 더 많이 먹기로 한다.
언제나 나에게 시작은 즐겁다. 30대 중반에도 여전히 호기심이 많은 나는 지금도 ‘새로운 것’에 매력을 느낀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사를 많이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환경, 집, 동네, 사람들에 적응해야 할 일이 많았다. 어렸을 적엔 그것이 숙제처럼 느껴졌지만, 언젠가부턴 즐기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나는 지금의 삶이 조금이라도 지루하다고 느껴질 때면, 새로운 것을 향해 시선을 옮기는 버릇이 생겼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취미와 일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 버릇의 치명적인 단점은 새로운 것들이 익숙해지면 그 익숙함은 다시 지루함으로 탈바꿈된다는 것이다. 타올랐던 새로움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변하고, 결국 그 사랑의 결말은 흐지부지된다.
그렇다. 나라는 인간에게 씨앗 심기란 너무나도 쉽고 즐겁지만, 추수는 늘 어렵고 지루하다. 이런 나에게 최근 꼭 추수하고 싶은 씨앗이 생겼다.
“타인에게 덜 친절해지기로 한 것”.
이 씨앗 심기는 이 전에 뿌린 다른 씨앗들과는 달리 시작부터 어렵다. 시작부터 어려운 이것을, 이번에는 기필코 수확해보려 한다.
조금은 손해 보며 살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돕고 사는 것, 보다 따듯한 삶을 위해 내가 노력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도와주고 싶은 친구나 지인에게는 온 마음을 다하는 것, 이 일은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고, 즐거웠다. 함께 무언가를 나누며 사는 것. 꼭 어떤 물질을 나눈다기보다 삶의 지혜와 정(情)을 공유하고 싶었다. 초코파이처럼 달콤한 정을.
하지만 타인들은 나처럼 초코파이를 나누는 일에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모든 관계는 쌍방일 때 원활하다. 다시 말해, 일방통행은 마주 볼 수 없다. 그래서 서글프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 일방통행의 공허함을 알게 되다니. 허무하고, 한심하다. 내가 나눈 마음과 정의 크기가, 상대와 같을 수 없다는 것,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싶었던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아버려서 괴로웠다.
나의 남은 인생은 스스로 덜 상처받기 위해, 타인에게 초코파이의 달콤함을 좀 덜 나눠주기로 한다. 어쩌면 나에겐 가장 어려울 그 씨앗을, 용기 내 심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