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과 후에 하는 행동이 있다. 침대에 누운 상태로 한쪽 무릎을 ㄱ자로 만든다. 그리고 다른 쪽 종아리를 무릎에 대고 위로, 아래로 문지른다. 하체 부종 때문에 밤마다 부어 있는, 곧 부을 하루의 종아리를 위한 나의 배려이다.
양쪽 종아리를 번갈아 가며 반대쪽 무릎에 대고 위아래로 마사지를 하면 하기 전보다 조금은 말랑해진 느낌이다. 약 15분간 이 체조(?)를 하며 인스타그램 피드 구경을 하거나, 오늘 아침은 뭐 먹지, 내일 할 일에 대해 계획을 세우며 일어나고 잠을 청한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직업인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했다. 물론 그땐 작곡가가 꿈이었으나 짧은 손가락 때문에 과감하게 포기하고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게 되었다. (그 선생님만 안 만났더라면 이런 고달픈 인생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오랜 시간 동안 연필로, 목탄으로, 콩테로 유화로, 손으로 만지며 그림을 그려서인지 지문이 다 닳았다.
닳아버린 지문 때문에 동사무소에서 무인 발급기로 무료로 뽑을 수 있는 각종 증명서에 지문인식이 되지 않아 돈을 주고 창구에서 번거롭게 발급해야 한다. 또 요즘은 지하철이나 기차역에 짐 보관함도 동전이나 키가 아닌 지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른손은 아예 인식되질 않고, 왼손은 식은땀을 흘리며 30분 정도 씨름을 해야 겨우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범죄를 저질러도 못 잡힐 것 같다)
매일 아침과 밤에 종아리를 무릎으로 마사지하며 문득 생각한다.
‘이러다가 지문처럼 무릎도 닳겠어. 무릎에도 지문이 있다면 이미 없어졌을 거야.’
유명 관광지에 설치된 동상엔 어느 특정 부분만 닳아서 반짝이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돌진하는 황소』상인데, 황소의 소중한 곳을 만지면 대박 난다는 설이 있어 줄 서서 그곳을 만지고 사진을 찍는 유명한 녀석이다. (이런 설은 당최 누가 만들어낸 걸까) 실제로 월가 황소의 거시기는 사람들 손을 많이 타, 유난히 반들반들한 금색을 띤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의 종아리 마사지를 책임지는 내 두 무릎이 만약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면 월가 황소의 거시기처럼, 동그란 모양으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나의 무릎아, 널 희생해서 종아리를 살려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종아리를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