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이 자연스러운 돼지 다섯 마리

DK상사

by Eugene

2004년, 원하던 학교에 떨어지고 들어간 곳에 겨우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친구 덕분이다. 재수도 했는데 원하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던 박반장과 나는 삼수까지 할 자신은 없었기에 일단 1년은 다녀보자는 마음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며 통학을 했다. 함께 통학하며 드라마 이야기를, 남자 이야기를 나누었고, 무엇보다 하굣길에 그렇게 먹어 댔다.


40명 정도의 동기들은 A, B반으로 나누어졌다. 나는 A반. 모두가 뻘쭘한 신입생 시절, 실기실의 자리 배치로 인해 사회생활의 첫 친구가 결정되기도 한다. 내 옆자리엔 마산에서 온 허늬가 있었고, 자연스레 그녀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허늬와 친해 자주 우리 쪽 자리로 출몰하던 구카와도 가까워졌다.


신입생 때는 이상하게 재수생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뉘어 놀게 되었다. 재수한 언니들을 유난히 애교 있게 잘 따르던 예봉이는 B반이었지만 허늬, 구카와 친했기에 그렇게 우리는 모두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이렇게 나, 박반장, 허늬, 구카, 예봉, 우리 다섯은 서양화과 04학번 동기로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가 되었다. 이 그룹의 그룹명은 “DK상사”인데, 한때 토요일 저녁을 책임지던 MBC 예능 『무한도전』(2006~2018)에서 회사 역할극을 하며 이름 지었던 “무한상사”에서 따왔다. 이 역할극에서 우리는 각자의 캐릭터에 맞는 직위를 하나씩 갖고 있다. 나는 부장, 박반장은 반장, 허늬는 총무, 구카와 예봉이는 인턴. 모일 때면 부장이 젤 일찍 오는 그런, 상하 구조라곤 하나도 없는 바람직한 그룹이다.


16년의 세월 동안 각자의 생일을 비롯한 다양한 경사들을 옆에서 함께 해 왔다. 다섯 명 중, 재수를 하지 않은 세 명의 친구들이 결혼했고, 사랑의 시작은 쉽지만 헤어짐이 어려운 박반장과, 시작이 어렵고 헤어짐이 쉬운 나만 싱글로 남아있다.


모두 다른 일을 하고, 사는 곳도 지도에 별표를 그릴만큼 떨어져 있지만 1년에 두 번은 꼭 보자는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다. 상반기와 하반기. 요즘엔 만나면 나이 듦에 노여워하지만, 여전히 20살 그 시절의 우리들 같아서 좋다. 나의 주변인 중에, 함께 있을 때 욕을 자연스레 내뱉을 수 있는 그룹이 바로 DK상사이다. 가장 맛깔나는 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들. 갓 고등학생의 티를 벗어나던 시절에 만나서 그런지, 30대 중반에 만나서도 욕을 달고 살던 그 시절로 편하게 돌아갈 수 있다.


대학 시절, 학교 앞에 우리가 자주 가던 돼지 고추장불고기 집이 있었다.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던 우리는 식당 문을 열면서 동시에 주문을 외쳤는데 하루는,


“아줌마! 여기 돼지 다섯이요~”


라고 예봉이가 말했다. 사장님은 웃으시며,


“돼지 다섯 명이라는 줄 알았네~”


라고 싱거운 농담을 하셨고 낙엽만 굴러가도 깔깔거리던 다섯 명의 소녀들은 그 이후로 우리 스스로를 돼지 다섯이라 부르게 되었다.


돼지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름다운 나의 DK 상사 직원들.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유일하게 그림을 그리는 나의 전시에 와서 의미를 묻는 친구들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네도 미대 나왔잖아. 각자 알아서 그냥 해석해^^ ㅋㅋ”


1년만 다니려고 했던 나의 학교에서 이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대학 생활을 즐겁게 해 준 이 친구들과 시원하게 욕하며 수다 떨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과거와 현재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돼지 다섯이요~”를 외치며 맛깔나는 음식과 욕을 동반한, 우리가 함께한 시간만큼 즐거운 수다를 떨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