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

분당 베프들

by Eugene


개족보 모임의 장점은 멤버 각각의 지식과 인맥을 폭넓게 활용하며 난장판으로 즐겁게 놀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단점은 다리 건너의 관계이기 때문에 조금은 불편하거나 어색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내 친구 A와 B를 나라는 사람을 중간에 두고 소개를 해 주었을 때, A와 B가 나를 빼고 만나거나 나와의 관계 이상으로 발전되면 질투 따위의 비슷한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관계 자체가 헷갈리기도 한다.


가족,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지칠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고 찾게 되는 친구들이 있다. 기미내, 방나, 윤박이. 이들은 내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기미내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니 이제 거의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나와 윤박이를 제외한 두 명은 결혼해서 시드니와 홍콩에 살고 있다.


같은 초,중,고를 함께 간 기미내를 제외한 윤박이와 방나는 다른 중학교에서 우리가 다닌 고등학교에 각각 입학했다. 그래서 1학년에 유치하기 그지없는 텃세를 부리며 싸우기도 했다.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하던가. 같은 반이 되고, 친해지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울고 웃던 많은 추억이 쌓였다. 점심시간만 되면 뛰어나가 치마 입고 고무줄을 세상 그 무엇보다 열심히 했고, 대학생 인척 온갖 멋은 다 부리고 소풍, 수학여행을 가서 남들이 쳐다보든 말든 각종 이상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각자 다 다른 대학교에 가고, 몇몇이 해외에 거주하던 시간이 있어서 연락이 뜸한 시기가 있기도 했지만 본가가 분당 근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가끔씩 오래 볼 수 있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다이나믹 듀오가 2013년 발매한 음반 『LUCKYNUMBERS』의 수록곡 “가끔씩 오래 보자”는 개그맨 신동엽에게 다이나믹 듀오가 “형, 저희 자주 봐요.”라고 말하자, “다들 바쁜데 뭘 자주 봐~ 그냥 가끔씩 오래 보자.”라고 답한 것이 인상적이어서 곡으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 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다 좁고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나에게 어쩌면 잘 맞지 않는 관계의 기준일지 모른다. 하지만 함께 한 ‘시간’이라는 무서운 녀석이 개입하면 이 기준은 더 끈끈한 관계가 된다.

몸은 멀리 있어도,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천천히 나누어 온, 나의 분당 베프들과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로 우리들의 오래된 시간을 안주 삼아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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