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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an 12. 2021

OK girl은 연애할 때 노잼인가요?

“응, 그럼~” 


 나도 모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대구에 사는 영이 언니가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서울 사람들은 ‘그럼’이라는 말을 원래 자주 써?”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데 그건 왜?” 

“너가 그러엄~이라는 말을 자주 써서 물어본 거야.” 


 관찰력과 치밀한 연구력을 가진 영이 언니여만 알아낼 수 있는 나의 말습관을 언니 덕에 알게 되었다. 평소 나는 말의 조*(보통 ‘쪼’라고 발음한다)가 있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정 말투나, 리듬을 가진 사람인데, 대부분 한 사람이 오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경우에 쉽게 발견된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내린 통계에 따르면, 비교적 많은 사람이 가진 ‘쪼’는 “이제”이다. 그 “쪼”가 어느 순간 내 귀에 관통되면, 나는 그 “쪼”때문에 상대가 하는 말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내가 그런 습성을 가졌다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나는 말할 때 타인에게 “쪼”가 발견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의 “쪼”와 같은 말습관을 영이 언니가 발견해 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응, 그럼~”이라는 말은 나의 성향을 대변한다. (연애 빼고) 무엇이든 쉽게 잘 시작하고 도전이 어렵지 않은 나는 “~해도 돼? ~할까? ~해볼까?”라고 누군가 제안했을 때, 대부분의 경우에 거절하지 않고 “응, 좋아, 그럼~! 해보자”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그 대답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이 행동으로 인해 나에겐, 무엇이든 OK하는 OK girl의 이미지가 부여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기준이 없고 아무거나 다 괜찮아하는 성인군자의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나 역시 분명 취향이 있고, 기준이 있다. 다만, 나에게 부탁, 혹은 제안을 하는 내 주변인들이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졌거나, 예의가 바를 뿐이다. 


 연애할 때도 웬만하면 난 상대에게 맞춰주려 한다. 그만큼 아주 강한 취향을 가진 것도 없을뿐더러, 서로 배려하는 것이 연애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툼을 일으키기 싫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지나친 OK가 불러온 결과는 노잼녀(재미가 없는 여자)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지난 연애에서 나는 상대에게 “무엇이든 다 좋고 OK라고 하니 티격태격하는 맛이 없어서 재미가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난 그와 밥을 먹으러 갈 때면 어지간하면 그가 먹고 싶은 것에 다 맞춰주었고, 드라이브할 때에는 플레이리스트도 그에게 맞추었다. (물론 그의 차였지만)  


‘다 배려해주는데 그게 재미가 없다고?’ 

‘그럼 매일 다투고 싶나?’ 

‘한식도, 일식도, 중식도, 양식도 다 먹기 싫다는 여자 만나라 그럼.’ 


 그 이후로 난 “응, 그러엄~(OK)”이라는 말을 할 때 조금 신중하기로 했다. 특히 이성을 만날 경우엔 더더욱. 

 난 노잼녀가 아니다. 다만 잼의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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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 ‘태도’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출처: 표준국어 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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