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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an 20. 2022

제목=결론부터 말하는 사람이 좋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난 호기심이 많아 이런저런 강의를 많이 듣는 편인데, 여러 강연자를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화법만으로도 호불호가 가려질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막상 무언가를 배우러 갔던 수업에서 ‘난 절대 저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라는 강의법을 배워오기도 한다. 그만큼 어떤 사람이 말할 때,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그리고 그가 쓰는 방법이 ‘무엇을’ 말하려는 지에 대한 명확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글이나 예술 작품에서 ‘제목’을 짓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말을 할 때, ‘제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제목부터 말하는 사람이 좋다. 여러 강의에서, 많은 강연자를 직/간접적으로 만난 경험에 기반해 내가 선호하는 화법을 찾은 셈이다. 이 방법이 명확하고 경제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렇게 말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말하는 구어체에서 제목이란, 결론과 유사하다.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의 어떤 강연에서, 그는 미국에서 논문을 쓸 때 있었던 에피소드를 말한다. 혼자 논문을 오래 쓰다 보니 잘하고 있는지 가늠이 안 되어 친구에게 자문을 구할 겸, 논문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논문을 읽은 친구는 맨 마지막 장을 북- 뜯더니, 가장 앞 장으로 옮기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논문 완성.” 


 당황한 최재천 교수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제일 중요한 말을 왜 처음부터 하지 않느냐고, 결론을 처음부터 말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 순간, 교수는 본인이 변죽만 놀리다가 제일 끝에 중요한 말을 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이후, 최재천 교수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경제성’이 되었다고 한다. 


 글쓰기에서뿐 아니라, 청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한다면, 말할 때도 ‘경제성’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결론부터 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같은 시간 동안 동일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은 어떨까? 아마 나의 경우에는 결론을 마지막에 말하는 사람과 함께 오랜 시간 있다 보면 피로감이 몰려올 것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성격이 급해서일지도? 


 소설이나 영화처럼 이야기의 흐름, 전개, 감정 등이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면, 나는 보통 두괄식의 글쓰기와 말하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정확성과 경제성을 따지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이 방법이 화자와 청자에게 모두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패를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편하고 쉽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있기도 하고. 


 이 화법은 이성 관계에서도 적용이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은 당황하기 일쑤다. 좋은데 좋다고 말을 하지 않고, 싫은데 싫다고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사람 마음이란 것이 명확하기가 힘든데, 너무 결론처럼 말을 해서 그런 걸까? 상대방이 상처 받을까 하는 배려심에 에둘러 표현한다고 말하기엔 비겁한 변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선 일상생활의 화법과 마찬가지로, 나는 미괄식보단 두괄식 애정표현을 주고, 받고 싶다. 그러므로 제목부터 말해주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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