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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an 26. 2022

새로운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가 들어 혼자 되는 삶은 어떨까? 상황과 환경이 한 사람의 인생을, 태도를, 상태를, 아니 어쩌면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95세가 되어서도 쾌적한 집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누군가는 쪽방 같은 공간에서 갇힌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닌 갑갑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런 삶을 과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죽고 싶어도 죽을 용기가 없어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삶. 


 나의 외할머니는 고시원을 연상케 하는 2평 남짓한 쪽방에 혼자 사신다. 외삼촌의 건물에 딸린 작은 집인데, 있을 건 다 있어도 외로움이 가득 느껴지는 방이다. 겉으로 봤을 땐 마치 외삼촌이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할머니의 하루는 외삼촌의 아침을 준비하며 시작한다. 90이 다 된 엄마가 60이 넘은 아들의 아침을 차려주며 그의 출근을 배웅한다. 60이 다 된 아들의 와이프는 그녀의 삶이 더 중요해서 시어머니와 남편의 밥을 차려줄 생각이 없다. 이런 사정을 잘 알 리가 없는 못난 손녀딸은 구정을 앞두고 오랜만에 갑작스레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외롭고 쓸쓸했던 할머니는 날 보자마자 와락 껴안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5년 전, 약 1년간 난 할머니와 함께 산 적이 있는데, 그때 내 기억 속의 씩씩했던 할머니는 온데 간데 없고 처량한 할머니만 있었다. 


 할머니를 만나기 전, 대학교수님과 교수님 어머니의 전시를 보았다. 두 분 모두 오래 그림을 그리고 계신 작가들인데, 교수님의 어머니는 95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붓을 잡고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신다. 여전히 할 일이 있어 즐거워 보이셨던 귀여운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림을 그리던 30대 시절부터 꾸준히 본인의 딸을 그려왔다. 5살의 딸, 10대의 딸, 20대의 딸, 그녀의 딸이 결혼하기 전까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꾸준히 표현해  온 것이다. 그리고 딸이 미대를 가고, 화가로 활동하면서부터는 함께 비슷한 길을 걸어오며 동료, 선후배 사이가 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그림을 그렸다. 그 어마어마한 두 사람의 역사를 눈앞에서 확인하니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다. 


 나의 할머니와 다르게, 이 할머니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아무리 95세여도 죽기 싫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와 다르게, 오늘 만난 나의 할머니는 오늘 잠이 들면 아무도 모르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고, 하루하루가 재미없고 쓸쓸하다고. 그저 죽지 못해 살고 있다고. 


 2030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23%가 고령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을 정도로 고령화 사회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시니어들도 본인들의 삶을 현재에 맞게 설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가지의 직업으론 살 수 없는 현시대에서 ‘노인’의 삶만 사는 것이 아닌, ‘화가’의 삶을 함께 사는 교수님의 어머니처럼. 그렇다면 적어도 죽지 못해 사는 노인보다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두 할머니 모두, 과거의 삶을 그저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거의 삶이, 한 명에게는 ‘현실’과 만나 재미없는 삶이 되었고, 또 다른 한 명에게는 꽤 괜찮은 삶이 된 것이다. 


 본인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 살아온 인생이 다르므로, 둘 중 누구의 삶이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갈 무렵의 나는, 빠르고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하루하루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새 시대를 맞이하는 새로운 어른이 아닐까? 나이 듦을 생각하며, 새로운 어른이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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