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독려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짙은의 “안개”

by Eugene

예술가로 산다는 것. 꽤 멋져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예술가로 살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나의 직업에 관해 물어본다면 요즘 말로 ‘존버’(존x 버티기)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일이라 대답한다. 당장 내일이,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희미한 길을 바라보며 묵묵히 나의 작업을 해야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지칠 때도, 때려 치고 싶을 때도 적지 않다. (아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x 버티다 보면 좋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좋은 ‘날’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다. 좋은 날보단 그렇지 않은 날들이 많을 수도 있기 때문에 ‘순간’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그런 ‘순간’은 5년 전에 찾아왔다.


2017년 대구의 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가장 자연스럽고 잘하던 것을 포기하려고 결심한 순간 찾아온 동아줄이었다. 그곳에서 머물던 1년은 내 예술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인생의 동료와 멘토를 만났고 다시금 ‘존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존버’하면서 예술가의 삶을 잘 지켜내고 있다. 하지만 언제 또 내 앞길이 많이 희미해질지 모를 일이다. 안개가 자욱이 덮인 길을 운전한 경험이 있다면 알 것이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의 불안함을. 예술가의 삶은 바로 안개 속을 걸어가는 여행자와도 같다. 안개 속을 걷는 것은 불안함과 짜릿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묘한 경험이다. 이 이상한 경험 때문에 사실 나는 안개가 많은 도시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무진이라든지, 시애틀이라든지.


비록 불안함 속을 걷는다고 할지라도 안개 속에서 누군가 날 이끌어주고, 함께 손잡고 눈 맞추며 걸어갈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용기 내어 끝까지 가 볼 만할 일이다.


대구의 한 기관에서 만난 날 ‘존버’할 수 있게 해준, 서로 독려하는 동료와 선배들은 나와 함께 그 안개 속을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가끔, 예술가의 삶을 잘 모르는 비예술인 친구들은 나의 삶이 자유로워 보여서 부럽다고 말할 때가 있다. 너와 같은 삶으로 도망가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이에게는 나의 삶이 도망가고 싶을 만큼의 자유로 생각될 수도 있구나. 그들이 도망간 삶에서, 함께 걷는 이들과 가끔 난 이 노래를 듣는다.


“누구도 우리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처음 같은 곳으로 도망가기 좋은 날. 짙은 안개 속에 들어갔을 때 뭐가 제일 좋았는지 얘기해줄까? 내 눈은 그댈 찾기 위해 빛나고 내 손은 그댈 잡기 위해 존재하는 것”[1]


대구에서 만난 동료와 가끔 캠핑을 하러 가서 아침에 눈을 뜨면 이 노래를 함께 듣는다. 이 노래를 들으며 우린 서로에게 무언의 위로를 건네고, 응원을 받는다. 안개 속 삶을 함께 용기 있게 걸어가는 사람들과 함께라서, 아직은 ‘존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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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4년 짙은이 발표한『disapora:흩어진 사람들』앨범 중, “안개”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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