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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하는 말

by 조작가

사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 회사의 팀원만 봐도 그렇다. 각자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J는 출근할 때, 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찍 나왔네". 그리고 퇴근할 때 이렇게 말한다. "나 약속 있어서 먼저 갈게". 팀원이 정말 일찍 나와서 "일찍 나왔네"라고 말하거나 정말 약속이 있어서 먼저 퇴근한 건 아니다. 팀원들이 매일 일찍 나올 리도 없고, J가 매일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다. 그저 습관처럼 하는 말뿐이다. H는 '이를테면'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를테면'은 말 뒤에 나오는 것이 앞의 것에 대한 예를 설명할 때 쓰는데, H가 항상 앞의 것을 설명하는 근거로서 뒤의 말을 쓰지 않는데도 '이를테면'을 습관처럼 붙여 쓴다. L은 '어떤'이라는 단어를 거의 한 문장에 두세 개씩 쓴다. '어떤'이 어떤 것을 말하는 지시대명사이기보다는 감탄사 내지는 추임새와 같이 쓰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습관처럼 자주 쓰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일이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옆집 아줌마 집에 갔다. 아줌마하고 부르니 아줌마가 방에서 나왔다. 나는 어머니 심부름을 아줌마에게 전달했고 아줌마는 그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면서 '가만있어 봐'라는 말을 하고서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난 무려 그 자리에서 30분을 가만있었다. 아줌마가 30분 뒤에 나오면서 '너 왜 아직도 안 가고 거기에 있니'하는 게 아닌가? 아니 이 무슨 장난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본인이 나보고 가만있어 봐라고 해놓고서 왜 나보고 가만있냐고 묻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줌마가 30분 만에 나왔으니 다행이지 1시간이나 2시간 뒤에 아니 몸이 고단해 잠이라도 잤다면 나는 그날 밤새워서 기다렸을 것이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나중에 알았다. '가만있어 봐'라는 말을 습관처럼 자주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만있어 봐'는 진짜 가만있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H의 '이를테면'이나, L의 '어떤'처럼 그냥 하는 말이다. 영어로 하자면 ' let me see' 정도의 말이었던 거다.


다른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쓰는 말에 너무 의미를 둘 필요도 없지만 아무 말이나 습관처럼 마구 써서 상대를 헷갈리게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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