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에 도전하다
2월까지 바빴다. 6개월간 작업했던 석사논문과도 같았던 보고서를 끝냈고 15개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도 끝냈다. 작년 4월에 퇴사한 후 열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했는데 이제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3월이다. 3월은 뭔가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좋은 달이다. 뒤늦은 새해 계획을 세워봤다.
경제적활동, 사회적활동, 개인적활동. 크게 3가지 영역으로 나눠봤다. 경제적 활동, 개인적 활동은 뻔하다. 더 열심히 일하자, 더 열심히 살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동안 시리즈A와 B 사이의 스타트업에 대해 PR 자문을 해줬다면, 이제는 시리즈C까지 고객 대상을 넓히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독서, 음악, 바둑에 취미가 집중되어 있고, 더구나 앉아 글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몸쓸 일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몸 쓰는 활동을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산책, 자전거타기 등 아웃도어 활동을 더 할 생각이다.
사회적활동은 늘 생각만 해왔지 한번도 실천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활동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여러가지 개인 사정으로 정치활동은 자제하고 있다. 환경운동도 좋지만 이는 운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삶 속에서 실천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떤 사회적 활동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얼마전에 만난 한 홍보담당자가 "목소리가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해줬다. 종종 듣는 이야기다. 그말을 예전에 들었을 때는 유튜브를 하네, 팟캐스트를 하네 하면서 주로 수단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이번에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를 또 다시 듣고 보니 정말 내 목소리로 뭔가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내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능력과 내가 좋아하는 걸 생각해보니 글쓰기와 문학과 연계해서 생각하게 됐고 그게 바로 낭독(朗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1년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해서 보이스트레이닝 학원도 알아보고 관련 책도 샀었다. 결국 바쁜 일상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로 끝났었다. 1년 전과 다르게 이번에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또 하나의 인연 때문이다.
시리즈C 기업인 V사는 장애인 관련 기업이다. 4년 전 인터뷰로 V사 대표를 처음 만났고, 그 후에는 가끔 문자만 주고받았었다. 그러다 올해 초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마침 V사가 마케팅과 PR을 통해 본격적으로 성장하려는 시점이어서 봄부터 PR 관련 일을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고객사인 V사 일을 맡게 된다고 하니 자연 V사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목소리+문학에 장애인을 결합하니 할일이 분명해졌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 봉사다.
장애인이 500만명이라고 한다. 작은아버지는 교사로 근무하면서 퇴임 마지막 해는 거의 보지 못하셔서 수업을 외워서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 분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교사에서 퇴임하자 삶의 의욕을 잃으셔서 한동안 작은어머니와 가족들을 힘들게 하셨다. 다행히 지금은 책도 내시고 시각장애인 프로그램을 활용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장애인은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다.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그들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삶을 누릴 수가 있다.
낭독이란 소리내어 글을 읽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분들에게 내 목소리로 좋은 문학작품을 읽어준다면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그 분들도 좋은 문학작품을 만나고 문화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그래 내가 그 분들의 책 읽는 눈이 되어주자"라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쉬운 게 없다. 낭독이 목소리만 좋아서 될 일이 아니다. 눈으로 읽지 못하고 귀로만 들어야 하는 시각장애인에게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갖춰야하고 훈련해야 한다. 검색 해보니 낭독 훈련도 상당한 노력과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살짝 후회가 됐다. 마치 영어를 배우겠다, 운동하겠다고 설쳐대다가 막상 학원을 등록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바쁘지 않아서 시작해보지만 곧 바빠지면 못하는 건 아닐까? 괜히 시작했나? 그러면서 못할 핑계 몇가지를 생각해봤다. 목소리는 좋지만 내가 호흡이 별로이니 난 아마 못할거야, 낭독자들이 대부분 여성인데 내가 해도 될까? 내가 무슨 봉사를 등등.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겁도 나고 걱정도 들기 마련이다. 이럴땐 그냥 질러버리는 게 상책이다.
낭독 레슨을 받기로 했다. 낭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도 있고 이 보다 넓은 개념인 보이스트레이닝을 가르치는 곳도 있다. 주로 성우 출신이나 아나운서 출신들이 이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복지센터에서도 낭독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곳을 알아 보고 선택한 곳은 성악가가 하는 발성과 호흡 위주의 레슨 프로그램이다. 노래도 가르쳐준다는데 노래를 배울 생각은 전혀 없다. 여태까지 되지 않은 노래가 될리가 없다. 낭독만 잘하면 된다. 기왕 낭독 봉사하기로 한거 잘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