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망구엘은 방대한 독서량으로 유명하고 본인 스스로 독서가라고 직업을 밝힐 정도로 많은 책을 읽는 작가이자 세계 최고의 독서가이다. 망구엘은 196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일했었는데, 서점에서 일하는 이유에 대해 '책에 파묻혀 살고 싶어서'라고 얘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엄청난 행운이 찾아왔다. 그의 나이 16살 때 일이고 이 이야기는 그의 책 '독서의 역사'에 소개됐다.
어느 날 오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여든여덟 살 된 노모의 손에 이끌려 서점을 찾아왔다. 보르헤스는 이 시기에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였다. 20세기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소설가로 평가되며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보르헤스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 보르헤스가 서점에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책을 찾던 보르헤스는 망구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독서의 역사'에서는 보르헤스에 대해 '거의 맹인이나 다름없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어머니의 도움으로 책을 읽었지만 여든여덟이나 된 어머니에겐 미안한 일이었을 것이다. 망구엘은 그 자리를 수락했다.
1964년이면 보르헤스가 65세(1899년생)다. 이 시기에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하고 있었다(55년부터 73년까지 역임했다). 보르헤스 가문엔 시력이 약화되는 유전적 질환이 있었다. 시력이 약한 보르헤스가 계단을 오르다 열어놓은 창문에 머리를 부딪친 후유증으로 한 달 가까이 병석에 누운 일도 있다. 보르헤스는 1927년부터 무려 8회나 안과 수술을 받았지만, 하도 책을 읽어댄 탓에 30대 후반부터 시력을 서서히 잃기 시작해서 말년에는 완벽하게 시력을 잃고 말았다. 시력을 잃은 뒤엔 어머니나 비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책을 읽고 집필활동도 했다. 당시만 해도 점자책이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과 같이 오디오북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니 결국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책을 읽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망구엘과 보르헤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후 2년 동안 나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다른 우연한 만남이 그러하듯, 저녁 시간이나 또 학교가 허락할 때는 아침 시간에도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대 문호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이었을까? 아마 망구엘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독서가가 된 데에는 이런 경험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나에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이런저런 개인적인 상황으로 나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모든 일 다 팽개치고 달려가 책을 읽어주겠다.
보르헤스는 망구엘이 읽어준 책 내용을 기반으로 집필활동을 이어갔다. 망구엘 또한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큰 공부가 됐다. 이보다 훌륭한 문학수업은 없을 것이다.
'종종 그는 우리가 읽던 책의 맨 뒷부분 백지장에 뭔가-각 장에 대한 참조 사항이나 생각 따위-를 적도록 지시했다. 이런 기록들을 그가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읽은 뒤에 그 책에 대해 논평하는 습관은 그 이후 그대로 나의 것이 되었다.'
보르헤스를 위해 책을 읽어주는 경험은 어땠을까? 망구엘은 기묘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비록 나 자신도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독서의 속도와 목소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텍스트의 주인은 언제나 듣는 입장인 보르헤스였기 때문이다. 나는 운전기사인 셈이었고 풍경, 다시 말해 시원스레 펼쳐지는 공간은 운전기사에게 몸을 맡긴 그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책을 읽어주는 망구엘이 그냥 단순한 운전사로만 있었던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그 이전의 독서 경험과는 또 다른 독서 경험을 제공해 준다.
'과거에 나 혼자서 읽었던 텍스트를 그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는 것은 초기의 나 혼자만의 독서를 수정하고, 그 당시의 독서에 관한 기억을 더욱 확대하고 충만시켜 주었다. 그의 반응에 자극을 받아 나는 나 혼자 읽었을 때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까지도 이제는 마치 이미 오래전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을 회상하는 것처럼 느끼지도 했다.'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책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낭독이란 이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