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인을 만나면 얼마 전에 시작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봉사 이야기부터 꺼낸다. 내가 이렇게 낭독봉사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대화의 소재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요즘 날씨 이야기만큼 대화의 소재로 좋은 게 없다. 어떤 일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돈을 들이는 것(그러기 위해서 호흡발성 레슨을 받고 있다)과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그것을 깰 수 없는 약속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면 중간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나와 사람들에게 했던 말도 있고 그동안 투자한 비용도 아깝기 때문이다.
내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낭독봉사 일을 시작했다고 하면 대부분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 낭독봉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을 뿐인데도 내 생각과 계획에 동조하고 동조를 넘어 너무 좋은 일을 한다며 반색해한다. 왜 그런 거 하냐, 그게 돈이 되느냐, 해서 뭐 하냐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물론 나의 스토리텔링 능력도 한 몫했을 것이다. 목소리로 좋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4년 전에 인터뷰한 장애인 관련 기업 대표를 올 초에 만나게 되면서 봄부터 함께 일하게 됐고, 문학을 좋아해서 문학작품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마침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성악가라서 성우와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보이스트레이닝 학원 대신 성악가에게 발성과 호흡을 배우고 있으며, 이참에 폐건강을 위해 한약까지 먹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 작은아버지가 눈이 나빠져서 교사 정년 퇴임 마지막 해에는 수업 내용을 다 외워서 수업했다는 얘기를 하면 눈물까지 글썽거리기도 한다. 이렇게 일이 커질지 몰랐다면서 충분히 발성을 배우고 올 가을에 낭독회를 해볼 계획이라고 하면, 자신도 목소리가 좋다며 은근 함께 참여하고 싶다는 희망까지 내비친다. 그동안 내가 보여왔던 모습이 아니여서 의아해 하면서도 봉사의 좋은 의미에 공감해주고 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대체로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일이어서 대부분 버킷리스트에만 있는 일이다. 그래서 봉사를 하겠다고 하면 일면 멋있게 보이기도 하다.
봉사라는 게 도대체 뭐길래 그런 반응을 보일까? 봉사(奉仕)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이다.(네이버사전) 영어로는 service(명사), serve(동사)다. serve의 어원인 servire'는 노예가 되다, 봉사하다, 섬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 노예나 하인이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을 의미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확장되어 '도움을 주다', '제공하다'와 같은 더 넓은 개념으로 발전했다. 그러니까 봉사라는 건 나를 희생해서 노예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을 말한다. 요즘처럼 삶이 힘들어 자신조차 돌보는 게 힘들 때 남을 돌본다는 생각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고백부터 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한 번도 봉사활동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요즘 아이들처럼 수행평가 때문이라도 억지로 봉사활동을 해본 적도 없다. 봉사는 아니지만 남을 돕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다. 곧 굶어죽는 아이들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나오는 유니세프와 같은 광고를 봐도 마음의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태도는 남에게 피해도 주지 말고 남의 일에 관섭도 하지 말자이다. 그래서 봉사를 포함해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왜 봉사를 하려고 하는 걸까?
봉사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흔히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에게 80시간의 사회 봉사 활동이 명해지는데, 봉사는 그렇게 보면 벌에 가까운 활동이다. 80시간의 사회 봉사 활동이라면 그만큼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80시간을 알바를 하면 돈을 벌고, 80시간을 운동을 하면 근육이 생기는 시간인데 그것을 남을 위해 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위대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세상은 나를 위해 사는 사람과 남과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이 모든 것을 망치고 있다. 나도 잘 되어야 하지만 남도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어쩜 봉사는 나를 위한 일일 수 있다.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과 계획만으로도 스스로를 절제하게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내 생활이 엉망진창인데 남을 도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봉사하는 사람의 생활의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봉사라는 건 결국 '그'뿐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