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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사는 누구입니다" 대신

by 조작가

TV나 라디오에서 자기소개할 때 대부분 "어디에 사는 누구(이름)입니다."라고 말한다. TV 자막으로는 나이가 표시되고 신문 기사에선 이름 뒤에 나이를 붙인다. 성별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목소리와 외양으로 알 수 있다.


자신이 가장 잘 드러내는 게 성, 연령, 지역이라는 얘기다. 정치여론 조사에서 성, 연령, 지역은 판별분석에서 중요한 요소로 분석되며, 마케팅에서는 성, 연령, 지역에 기초한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호남에 사는 40대 남성이라면 어떤 정당과 어떤 후보자를 지지할지 짐작할 수 있고 서울 강남에 사는 20대 여성이라면 어떤 소비행태를 가질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광고에서는 세대 연구를 통해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광고물을 만들어낸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획일화된 곳에선 성, 연령, 지역 변수가 통계적 확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성별과 나이와 지역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서글프다. 성, 연령, 지역은 내가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요소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고정불변으로 태어났다는 얘기다. 태어나자마자 나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졌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미 태어날 때부터 나의 정치성향과 소비행태가 결정됐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성, 연령, 지역 말고도 자기를 나타내는 요소는 많다. 이렇게 자기를 소개하는 건 어떨까? "저는 콜드플레이를 좋아하고, 코엘류를 좋아하며, 블록버스터보다는 인디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미국 공화당이나 영국 보수당보다 민주당과 노동당을 지지합니다."


나를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선 또는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가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이며, 그의 사회적 태도가 어떤지를 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책은 그 사람의 지식수준을 보여주고 음악은 그 사람의 스타일을 나타내 준다. 어떤 단체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와 사회적 연대, 철학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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