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레나데는

슈베르트와 슈트라우스의 세레나데

by 조작가

독일어 Ständchen(슈탠첸)은 우리가 익숙히 알고 있는 세레나데다. 세레나데는 프랑스어로 '저녁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밤에 사랑하는 사람의 집 창문 밑에서 사랑을 고백 표현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로 한자로는 소야곡(小夜曲)으로 번역한다.


세레나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도시의아이들이 부른 '달빛 창가에서'를 들어보면 안다. 세레나데 이미지에 정확히 맞는 노래다.


"한 송이 장미를 종이에 곱게 싸서 어제도 오늘도 하루같이 기나리네

그대의 창문은 열릴 줄 모르니 사랑의 달빛으로 노크를 해야지

오오오 내 사랑 바람결에 창을 열고

달빛 미소 출렁이며 행복의 단꿈을 꾸어라

오오오 내 사랑 그대 드릴 꽃 한 송이

별 빛 미소 출렁이면 마음의 창문을 열어라"


세레나데는 사랑하는 연인의 집에 가서 연인의 방 창문 아래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이야기다. 요즘 세대는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라고 의문이 들 것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연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거나 SNS을 방문해 최근의 동향을 살펴보고 사진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사진과 동향 파악으로도 여전히 그립다면 한밤중에 이렇게 문자를 보낼 것이다.

"자니?"

현대판 세레나데인 셈이다.


하지만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 한밤중에 너무 너무 보고 싶고 그립다면 카톡 프로필 사진도 없고 SNS도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연인의 집까지 가는 것이다. 그나마 연인의 집이 가까이 있어(예전엔 대부분 동네 안에서 사랑이 이루어졌다) 찾아가기는 쉽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연인의 모습을 보기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 연인의 창문 밑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50대 이상이라면 이런 경험 한 두 번씩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연인의 집 창문 밑으로 달려갔던 경험, 혹은 누군가가 나의 집 창문 밑으로 달려왔던 경험 말이다. 연인의 집 창문 밑으로 달려가든, 누군가 나의 집 창문 밑으로 달려왔던, 공통점이 있다. 대개 짝사랑일 확률이 높다. 짝사랑이 아니라면 굳이 한밤중에 창문 밑까지 달려가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는 짝사랑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집안의 가문에서 반대했기 때문에 한밤중 창문밑으로 달려가서 은밀한 사랑을 나눴어야 했다. 그러니까 세레나데는 짝사랑의 아픔을, 그리고 반대를 무릅쓰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로맨틱한 사랑에 대한 노래다.


예전 음악에 세레나데가 많은 이유는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에 마음을 이렇게 밖에는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동네 저 동네 곳곳에서 청년들이 창문을 열어달라고 노래했을 것이다. 온 동네가 시끄러웠을 것 같지만 들을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노래에 자신있는 연인들이 이 세레나데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연인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고 하는데 음치면 창문을 열어줬을까? 그래서 아마 그 당시에는 음악학원이 연인들로 꽤나 문전성시를 이루지 않았을까싶다. 연인의 창문을 열기 위해서 말이다.


많은 음악가들이 세레나데를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세레나데 곡은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다. 성악곡으로는 슈베르트, 슈트라우스의 세레나데가 유명하다.


1.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연가곡집 '백조의 노래' 4번째 수록 곡이다. 백조의 노래는 슈베르트가 죽기 직전에 만들어진 연가곡으로 시인인 렐슈타프의 시에 음악을 붙였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보통의 세레나데의 밝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애절하다. 슈베르트는 부모님의 반대로 첫사랑인 테레즈와 헤어졌고 테레즈를 그리워하며 노래를 만들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 그리고 죽음 직전이여서 그런지 더욱 애절하게 들린다.


그래서 음악도 단조로 시작한다. D단조로 시작하여 F장조로 전조 되는 구조의 곡이다. 전체적으로 ABA의 3부 형식으로 중간 부분인 B 파트가 장조로 전환되면서 대조를 이룬다. 3/4박자의 완만한 왈츠 리듬의 곡으로 전체적으로 서정적이고 친밀한 분위기의 곡이다.


가사

내 노래가 조용히 간청하네

밤을 통해 그대에게

조용한 숲 아래로

사랑하는 사람아, 내게 와줘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속삭이며

달빛 속에서 바스락거리네

배신자들이 몰래 엿듣는 것

두려워하지 마, 내 사랑

밤꾀꼬리들이 우는 소리 들리니?

아! 그들이 그대에게 애원하고 있어

달콤한 소리로 하소연하며

나를 위해 그대에게 간청하네

그들은 가슴속 갈망을 이해해

사랑의 고통을 알고 있어

은빛 소리로 감동시키네

모든 부드러운 마음을

그대의 마음도 움직여줘

사랑하는 사람아, 내 말을 들어줘

떨리며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

와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줘


연인에게 와달라고 호소한다. 그런데 배신자들이 몰래 엿듣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여기서 배신자들은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을 말한다. 방해꾼이 더 적절한 번역일듯 싶다. 슈베르트에게 부모일 것이다. 밤꾀꼬리는 흔히 말하는 화자의 분신일 터. 밤꾀꼬리도 사랑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으니 제발 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애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들은 연인은 와줬을까? 아마 세레나데 조차 듣지 못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숲으로 와 달라고 하는 것 보니, 연인의 집 앞까지도 가지 못하고 저만치 떨어져서 세레나데를 불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연인은 세레나데를 듣지도 못했을 거리다. 소심하고 고통에 찬 세레나데다.


2. 슈트라우스 세레나데


리히르트 슈트라우스의 "Ständchen" (세레나데) Op.17/2는 1886년에 작곡한 가곡으로, '6개의 고성용 가곡' Op.17 중 두 번째 곡이다. 독일 시인 아돌프 프리드리히 폰 샤크(Adolf Friedrich von Schack)의 동명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은밀한 연인들의 만남을 그린 관능적이고 로맨틱한 작품이다.


원조는 D플랫 장조이며 3부 구조로 되어 있다. 리듬은 복잡하고 높낮이의 폭이 깊다.


가사

문을 열어줘, 문을 열어줘, 하지만 조용히 내 사랑아

잠든 이를 깨우지 않도록

개울물도 겨우 중얼거리고, 바람에 나뭇잎도

덤불과 울타리에서 겨우 떨릴 뿐


그러니 조용히, 내 소녀야,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게

손잡이에 살짝 손만 올려놓아


요정들의 발걸음처럼 가볍게

꽃 위를 뛰어다니듯

달빛이 비치는 밤으로 가볍게 날아 나와

정원의 내게로 살그머니 와줘


시냇가의 꽃들은 모두 잠들어 있고

잠든 채로 향기를 내뿜네, 오직 사랑만이 깨어 있어


여기 앉아줘, 보리수나무 아래

신비롭게 어스름이 내려

머리 위의 밤꾀꼬리가

우리의 키스를 꿈꾸게 하자

그리고 아침에 깨어날 장미가

밤의 황홀감으로 높이 빛나게 하자


슈트라우스의 세레나데는 조금 더 밝고 적극적이다. 문 앞까지 와서 당당하게 말한다. 문 좀 열어달라고. 하지만 밤 늦은 시간이라 개울물도, 바람도, 꽃들도 잠들었으니 조용히 오라고 한다. 그러니까 들키지 말고 조심스럽게 오라고 하는 것이다. 은밀하다. 아마도 밤 몇시에 찾아갈 거니까 기다리라고 약속했을 것 같다. 노래는 관능적이다. 아침에 깨어날 장미를 얘기하는 것보면 약속해서 밤에 만난 두 연인이 아침까지 보냈던 것 같다. 매우 황홀했을 밤인건 분명해 보인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는 짝사랑의 고통을 노래한 세레나데라면 슈트라우스의 세레나데는 로맨틱하고 관능적인 세레나데다. 두 곡의 음악을 듣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을 위한 당신의 세레나데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인가 아니면 슈트라우스의 세레나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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