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지 않는 나의 클래식 듣기
'클래식힙'이 뜨고 있다. 클래식힙이란 클래식(classic)과 힙(Hip)의 합성어로, Z세대, 20-30대 M세대가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트렌드를 말한다. 얼마 전에 유행한 텍스트힙, 라이팅힙과 같은 궤의 트렌드다.
텍스트힙, 라이팅힙, 클래식힙의 공통점은 아날로그 문화라는데 있다. 디지털 세대에겐 이와 같은 아날로그 문화를 즐긴다는 것, 종이 책을 읽고, 종이에 글을 쓰고, 클래식 음악을 듣고 하는 것은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함으로써 남들과 다른 취향, 자기만의 교양을 만들어가겠다는 자기표현의 수단을 의미한다.
요즘 세대의 아날로그는 흔히 얘기해서 있어 보인다. 아날로그는 대개 수고스러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전자책으로 보면 간단한 걸 굳이 종이책을 보는 것도, 온갖 메모할 수 있는, 또는 음성을 노트해 주는 다양한 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팅을 하는 것, 그리고 어렵고 복잡한 클래식 음악을 LP로 듣는 것은 상당한 수고스러움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있어 보이고 남들이 하지 않아서 힙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최근에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지는 건 전혀 힙하지 않다. 아날로그 세대인 우리 세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건 전혀 힙하지 않다. 원래부터 해왔으니까. 우리가 힙한 건 노트북 하나 들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노마드적인 삶을 사는 걸 말한다. 그건 MZ세대의 전유물과 같은 디지털 문화니까
그동안 클래식을 조금씩 들어왔었다. 나의 음악 감상 비율은 대략 락 60%, 팝 15%, 포크 10%, 재즈 10%, 클래식 5%쯤 된다. 1700장의 음반을 소유하고 있으니 음반으로도 100여 장 가까이 있다. 듣는 비중이 적지만 남들보다는 클래식 음반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클래식에 관심을 더 갖기 시작한 건 나이 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취향의 변화일 뿐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록음악은 내 에너지를 분출하는 느낌이 들고 클래식은 에너지를 받는 느낌이 든다. 포크와 재즈는 그 중간쯤 되는 것 같다. 록음악을 가장 선호하고 밴드에서의 연주 음악도 록이지만 주로 듣는 음악은 클래식이다. 나이가 드니 분출하는 에너지보다 받아들여야 하는 에너지가 더 많아지기 때문인 듯싶다. 에너지는 꼭 먹는 것으로만 보충되는 게 아니다. 듣고 보고 즐기는 것으로도 에너지는 채워진다. 만약 이 이론이 맞다면 클래식을 더 많이 들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 세상이 하도 빠르게 돌아가니 그 속도를 조절하고 싶은 까닭도 있다. 클래식은 느림의 미학이다. 역시 이유를 모르겠지만 클래식은 LP로 들을 때 더 맛이 난다. LP는 느리다. 미쳐가는 세상에서 그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클래식만 한 게 없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하는 세상이다. 요즘 유행하는 숏츠는 겨우 몇 초 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듯 마구 쏟아낸다. 숏츠 한 편을 보고 나면 온몸에 피멍이 드는 것처럼 아프다. 달고 짠 음식을 먹는 것 같다. 먹을 땐 맛있게 먹지만 먹고 나면 탈이 나는 음식이다. 클래식 음악은 산사음식 같다. 처음에 먹을 땐 너무 심심해서 아무 맛도 안 나는 것 같지만 계속해서 먹으면 재료 자체의 본연의 맛이 난다. 그것은 본질적인 맛에 가깝다. 자극적인 콘텐츠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다면 클래식만한 게 없다.
작년 봄 퇴사라는 걸 했다. 처음 해보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 필요했다. 마음을 위로해 주고 날 보호해 주는 존재 말이다. 그게 나에겐 클래식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에너지를 받는 것 같다.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된다. 시간을 잠깐 멈춰 세워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산사 음식처럼 본질에 가까운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난 힙하지 않지만 클래식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