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강의 자료를 꼼꼼하게 챙겼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침에 뭘 먹어두는 게 좋을 거 같아 자주 가는 동네 김밥 집에 들러 김밥 한 줄을 먹었다. 택시를 집어타고 강의장 근처 커피숍에 가서 자료도 수정하고 강의 내용도 다시 한번 숙지해나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강의실에 들어가고서 큰일이 났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신발이 짝짝이다. 집에서 나설 때 잘 신고 나왔는데, 두고 온 물건을 다시 가지러 서둘러 들어갔다 나오면서 그때 신발을 바꿔 신은 듯하다. 구두라고 해봐야 고작 두 켤레인데 그걸 바꿔 신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다. 게다가 짝짝이인 걸 무려 4시간 만에 알았다니. 수강생들이 뭐라 생각할까? '신발 하나 제대로 신지 못하는 칠칠한 녀석 같으니라고'라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요즘 짝짝이로 신는 게 유행이다'라고 말해볼까 도 싶지만 양말 짝짝이는 있어도 신발 짝짝이는 나도 들어보지 못했다. 되도록이면 신발을 안 보여주려고 했으나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집에 들어와 "나 오늘 신발 짝짝이로 신고 나갔어"라고 말하니 애 엄마는 아주 한심하고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그래도 딸아이는 "나쁘지 않은데요"라며 위론지 뭔지 모를 웃음을 짓는다. 오늘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딸아이 또래가 아니라 애 엄마 또래였던 게 한편으로 아쉬웠다.
월요일을 맞았다. 오전이 지나서야 알았다. 혁대를 안 하고 나온 것이다. 일요일에 다른 바지를 입고 나갔었는데 그 옷에 혁대를 채우고 월요일에 입고 나간 옷엔 혁대가 없었던 거다. 그나마 겉옷으로 가릴 수는 게 다행이다. 그래도 자꾸 흘러내려가는 바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왜 이런 것도 못 챙기고 사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얼마 전에도 혁대 없어 출근했었다. 그날 양복을 잘 차려입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혁대가 없는 걸 알고 무척 당황해했었다. 평상시에는 혁대 파는 곳이 그렇게 많이 보이더니 이날엔 혁대 가게를 찾지 못했다. 양복 상의에 단추를 채우는 걸로 겨우 가리며 행사를 진행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어이없는 일을 반복하다니...
이제 바지 지퍼 안 올리고 출근하는 것은 너무 자주해 포기했다. 처음엔 자괴감도 들고 왜 이렇게 바보 같냐며 나 자신을 한탄했지만 그것도 반복되니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다른 준비물을 꼼꼼히 잘 챙기는 편인데 옷차림은 이렇게 못 챙긴다. 내가 정신없이 사는 걸까? 아니면 이 나이 되면 원래 그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