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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방아

by 조작가

오늘 아침 날씨가 꽤 춥다는 말에 무거운 코드를 입고 목도리까지 징징 목에 두르고 출근길을 나섰다. 거기까진 좋았다. 내 눈앞에서 버스가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종종걸음으로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데...


꿍!

1루 주자가 2루로 도루할 때의 슬라이딩처럼 다리부터 미끄러져 오른쪽 엉덩이를 밤새 딱딱해진 아스팔트에 쿵하고 받고, 몸과 머리 그리고 오른팔과 손까지 차례대로 땅바닥에 철퍼덕하고 말았다. 순간 엉덩이로부터 느껴져 오는 묵직한 고통. 그나마 나의 순발력 덕분에 한 부위에 집중적으로 가는 타격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제대로 엎어졌다면 어딘가 깨질법했다. 엎어지자마자 재빨리 일어섰다. 처음 보는, 어쩜 여러 번 봤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김연아는 뉴욕에서 트리플 플립(triple flip, 피겨 스케이팅에서, 스케이트의 안쪽 날로 도약해 세 바퀴를 돌아 착지하는 점프 기술)을 돌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는 그녀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재빨리 일어섰다. 같은 엉덩방아지만 김연아의 엉덩방아에 대해서는 그녀의 체력 저하를 그 원인으로 뽑으며 국민들은 안타까워했다. 반면 나의 엉덩방아는 그저 나의 조심성 부족이랄 수밖에 없고 그 누구도 걱정해주는 사람 하나 없다. 걱정은커녕 웃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녀가 엉덩방아를 찧자마자 재빨리 일어섰던 것은 아름다운 연기를 끝내기 위한 프로정신의 발휘라면 내가 엉덩방아를 찧자마자 재빨리 일어섰던 것은 쪽팔림 말고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


엉덩방아 이후 김연아는 '오늘 많이 배웠네요'라고 말을 했지만, 난 '창피해 죽겠네'라고 투덜거리며 빨리 버스를 갈아 탈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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